좋아함과 본받음 (고전4:14~21)
설교 요약
좋아함과 본받음의 복잡한 관계
좋아하는 사람을 본받게 된다는 생각은 직관적이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우리는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거나, 존경하지만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 인물들을 보며 좋아함과 본받음의 괴리를 경험한다. 심지어 바울파조차 바울을 진정으로 본받지 않고 그의 이름을 좋아했을 뿐이다. 이는 좋아함만으로는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음을 시사한다.
예수님은 본받을 분이 아니라 연합할 분
예수님을 본받으려는 시도는 종종 '화호유구(畵虎類狗)'처럼, 즉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 모양이 되는 것처럼 불신앙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수님은 단순히 모방할 대상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과 연합해야 할 대상이다. 이 연합을 통해 비로소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 우리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바울의 '왕 노릇'과 십자가 연합
사도 바울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할 때, 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추구하던 세상적인 왕 노릇이 아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하나 되는 삶을 본받으라고 권면한다. 이는 만물의 찌꺼기 같은 위치에서 주님과 연합하며, 세상의 가치들에 대해 마음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합을 통해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난다.
세상 가치를 이기는 왕 노릇
바울이 말하는 왕 노릇은 세상의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기는 것이다. 돈, 학벌 등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삶이다. 돈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고, 많아도 교만하지 않으며, 세상의 비웃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만족과 기쁨이 바로 이러한 왕 노릇의 본질이다.
목회자의 책임과 '나'의 죽음
목회자는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하는 것을 넘어, 교인들이 자신을 좋아하게 되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교인들의 마음속에 목사 자신이 아닌, 십자가의 예수님이 자리하도록 해야 한다. 목사는 '만물의 찌꺼기'임을 고백하며, 교인들이 자신을 본받기보다 예수님을 좋아하고,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을 본받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는 나를 좋아하면 망하고, 예수님을 좋아하면 산다는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복음으로 낳는 새로운 세상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복음으로 낳았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를 획득하려는 세상에서 세상의 가치를 이기며 살려는 세상으로 태어나게 했다는 의미다. 십자가 복음은 세상의 가치를 얻으려는 마음이 죽는 것이다. 돈이 없을 때 기도하며 하늘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노력, 즉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경험하며 세상의 가치를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다.
능력은 세상 가치를 이기는 것
사도 바울이 말하는 '능력'은 비천함과 풍부함 모두에 처할 줄 아는 능력, 즉 배고픔과 배부름에도 흔들리지 않는 능력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세상의 가치를 이기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 나라는 능력에 있으며, 그 능력은 세상의 가치를 이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에서 주님과 연합함으로써 세상의 가치를 이기는 삶을 본받아야 한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좋아하는 사람을 본받는 것이 항상 옳은가?
-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 ❓세상의 가치를 이긴다는 것은 어떤 삶의 태도를 말하는가?
-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왜 위험한가?
- ❓십자가 복음이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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