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별난 사랑 (고전13:1~7)
설교 요약
사랑의 역설: 궁극적 희생조차 무의미할 때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내어주고 몸까지 불사르는 극단적인 희생조차 사랑이 없으면 무익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과는 다른 차원의 '참 별난 사랑'을 시사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헌신이나 믿음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있음을 강조하며,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의 모습과 바울의 사랑: 겉보기의 차이
예수님의 공생애는 때로는 분노하고 정죄하는 등, 바울이 묘사한 '오래 참고 온유한' 사랑의 모습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전 정화 사건이나 바리새인들을 향한 질책은 언뜻 보기에 사랑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또한 산상수훈의 '뺨을 돌려대라'는 가르침과 달리, 예수님은 때로 단호하고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는 바울이 말하는 사랑이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이나 행동 양식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의 본질: 만남의 주체가 하나님이 되는 상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본질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상태입니다. 즉, 만남의 주체가 내가 아닌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적인 노력이나 성격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는 은사이자 기적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될 때, 비로소 모든 은사가 의미를 갖게 됩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 참 별난 사랑의 실현
이 '참 별난 사랑'은 자기-주권의 죽음, 즉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것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참지 못할 상황에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오래 참는 것처럼 보이고, 거부감이 들 때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온유한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인간적인 마음가짐과 반응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것이 바로 사랑의 은사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 예측 불허의 사랑의 양상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하나님이 나를 통해 나타나실 때, 그 양상은 예측 불허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저주하신 것처럼, 때로는 분노와 심판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적인 분노와 달리, 내 마음은 평강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도 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바로 상대방을 향한 최고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능력: 참 별난 사랑의 완성
사람을 만날 때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이 바로 '참 별난 사랑'입니다. 이는 인간적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과 지혜를 통해 가능해집니다. 사장, 자식, 배우자 등 누구를 만나든 십자가에서 죽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지혜와 사랑의 근원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바울이 말하는 '참 별난 사랑'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랑과 어떻게 다른가요?
- ❓예수님의 모습이 바울이 묘사한 사랑의 속성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사랑의 본질이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상태'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참 별난 사랑'을 실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나요?
- ❓하나님이 나를 통해 나타나실 때, 그 모습이 예측 불허인 이유는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사랑이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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