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도 교회도 왜 분쟁하며 분열할까 (고린도전서 1:1~17)
설교 요약
고린도 교회의 분열, 세상의 퇴폐성
고린도 시는 물질적 풍요와 극심한 성적 타락으로 '방탕아'라 불릴 정도로 퇴폐적인 도시였습니다. 헬라 문화권의 영향으로 개인주의와 자기주장이 강했으며, 이러한 세속적 기운이 강력하게 휘몰아치는 가운데 세워진 고린도 교회의 첫 번째 문제는 바로 분쟁과 분열이었습니다. 이는 인간 세상의 죄악으로 빚어지는 가장 우선적인 퇴폐적 특징입니다.
분쟁과 분열의 근원: 하나님의 주권 거부
분쟁과 분열이 없는 것이 마땅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주권적으로 관장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마치 죽은 자처럼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할 때, 각자가 자신의 주권을 내세우며 분쟁이 발생합니다. 인류 타락 이후 각자가 주권을 쥐게 되면서 75억 명의 세상에는 필연적으로 분쟁과 분열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살아계심을 거부할 때 일어나는 일이기에, 다른 퇴폐적인 일들보다 우선적인 퇴폐성입니다.
십자가 사건의 이론화, 분열의 씨앗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는 것을 경고하며,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 반문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그리스도이지 바울이 아니며, 세례는 복음 전파의 수단이지 분파를 만드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헬라 문화권의 수사학과 변증법에 익숙했던 고린도 교인들은 십자가를 이론으로 받아들였기에 분쟁과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십자가는 이론 체계가 아닌 사건이며, 이를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십자가 생활화: 분쟁 없는 연합의 길
십자가를 사건으로 받아들여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고백하는 것은 이론이 아닌 고백입니다. 나의 모든 이론과 생각 역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며, 그때 하나님의 주권적인 생각이 임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 속 예수님과 연합하고 쉬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고백하는 자아의식이 유지될 때, 분쟁이나 분열은 나타날 수 없습니다. 루터파, 캘빈파와 같은 분파는 십자가 사건을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데 실패했기에 생겨났습니다.
십자가, 유일한 사건이자 연합의 근거
분쟁과 분열은 세상의 퇴폐성 1호이며, 교회의 바탕이 되는 십자가 사건이 이론이 되었기에 교회 안으로 침투합니다. 십자가 사건을 나의 죽음의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기에 분쟁이 생겨납니다. 반대로 각자가 십자가 사건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생각들을 말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분쟁과 분열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에 대해서만 같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잊혀지고 잃어버린 상태에서는 반드시 분쟁과 분열의 기운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마음속 분쟁의 종식과 평강
사람 사이의 분쟁과 분열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하여 나의 주권을 내세우는 분쟁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분쟁은 십자가 죽음의 힘으로만 종식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죽음이 잊힌 모든 곳에는 분쟁과 분열이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사람 앞에서 표현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증오가 나타나는 것 역시 이미 분쟁과 분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분쟁이 마음속에서 생기는 동안에는 결코 평강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십자가를 붙잡을 때 비로소 분쟁과 분열에서 벗어나 하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고린도 시의 특징이 고린도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 ❓분쟁과 분열이 세상의 퇴폐성 1호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십자가를 '이론'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 ❓개인주의와 분쟁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 ❓교회 안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십자가 복음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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