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성찬식의 효과인 영육건강 (고린도전서 11:17~34)
설교 요약
성찬식, 단순한 식사를 넘어
우리가 매일 먹는 삼시 세끼 식사를 단순한 끼니 해결을 넘어 성찬식으로 승격시킬 때, 의도치 않게 영과 육의 건강이 주어집니다. 성찬식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일상적인 음식 위에 얹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이 성찬의 본래 의미를 잃고 공동 식사에서 분열과 수치심을 경험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잘못된 성찬을 책망하며, 성찬은 거룩한 식사임을 강조합니다.
성찬의 본질: 일상에 얹는 십자가
성찬은 예배당의 특정 예식이 아니라, 일상적인 음식 위에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얹는 것입니다. 밥과 국, 혹은 햄버거와 콜라를 먹을 때라도, 그 음식 위에 예수님의 죽음을 얹어 감사 기도할 때 그 식사는 성찬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의 참된 양식이 되게 하셨습니다. 먹는 방식으로 주님을 기억하고 마음에 담는 것이 바로 성찬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먹는 방식으로
예수님과의 진정한 관계는 단순히 기도하는 것을 넘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매일 먹는 끼니에 예수님의 죽음을 얹어 '지금 육체가 음식을 먹듯이 내 마음이 예수님의 죽음을 먹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먹지 못하면 마음은 기운을 잃고 세상에 먹히게 됩니다.
영혼의 양식, 예수님의 죽음
우리의 영혼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양식으로 삼을 때 힘을 얻습니다. 죽은 배추로 김치를 먹고, 죽은 쌀로 밥을 먹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마음의 음식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먹을 때 우리는 이 세상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할 힘을 얻습니다. 이 힘이 없으면 우울함, 무력감, 세상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음의 작용과 성찬의 효과
마음의 작용에는 있음을 느끼는 의식과 좋음을 추구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먹지 못하면 이 작용이 고장 나 마음이 약해지고 병들며, 결국 잠들어 죽게 됩니다. 그러나 삼시 세끼를 성찬으로 지킬 때, 마음은 영적으로 강하고 온전한 기능을 하며 하나님께 깨어있게 됩니다. 이는 신경성 질병으로부터의 해방과 면역력 증진으로 이어져 영육의 건강을 가져옵니다.
최고로 좋은 식사, 성찬
성찬은 내가 먹을 수 있는 식사 중 가장 좋은 식사입니다. 음식에 예수님의 죽음을 얹어 감사하며 먹을 때, 그 식사는 성찬이 됩니다. 라면을 먹을 때도 '예수님의 죽음을 먹고 마시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감사하면, 그 기운으로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만을 사랑할 힘을 얻습니다. 성찬은 우리 마음의 눈을 밝게 하여 보이지 않던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고, 영육의 강건함을 허락합니다.
의도치 않은 건강의 선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상을 떨쳐버릴 기운을 얻기 위해 음식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결합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건강이 부수적으로 주어집니다. 마음과 육신이 아프고 약할 때,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삼시 세끼를 성찬으로 지키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매 끼니를 거룩함의 식사인 성찬으로 바꿀 때, 영육의 강건함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성찬식이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 ❓일상의 식사를 성찬식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성찬식을 지킬 때 영육 건강에 어떤 변화가 있나요?
-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성찬식은 꼭 공동체 안에서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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