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신경 제거가 선민 됨의 필수다 (나2:1~13)
설교 요약
신경 제거의 필요성
우리의 육체적 신경은 통증을 느끼게 하지만, 마음에도 '신경'이 존재합니다. 이 마음의 신경은 삶의 상황에 대한 느낌과 반응을 담당합니다. 치과에서 통증을 없애기 위해 신경을 제거하듯, 우리의 마음도 삶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무감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의 신경이 제거된 상태, 즉 삶의 현장에서 완전히 무감각해진 상태가 선민 됨의 필수 요건입니다.
두 개의 중추신경 문제
선민에게는 두 개의 중추신경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중추신경으로 현실을 판단하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중추신경으로 우리 삶을 판단하십니다. 이 두 중추신경이 충돌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림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도 우리가 이 땅에 살아있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살피고 계심을 믿음으로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예민한 신경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마음의 중추신경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앗수르 멸망의 메시지
나훔서의 앗수르 멸망 예언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나 선민의 편을 드신다는 사실을 넘어섭니다. 이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의 결국이 참담한 멸망으로 끝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앗수르처럼 강함과 많음을 토대로 제멋대로 행하는 삶은 결국 패망합니다. 남 유다 역시 우상을 섬기며 마음대로 살려 했기에 앗수르와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선민은 결코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중추신경 제거 방법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마음은 우리 마음의 중추신경이 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중추신경을 몸 밖으로 뽑아내 성령의 품 안으로 보내야 합니다. 마치 마취된 환자의 몸을 의사가 수술하듯, 우리의 마음 중추신경이 성령 안으로 옮겨지면, 몸이 처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하늘을 느끼며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원수의 목전에서도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원리입니다.
성령 안으로의 중추신경 이동
우리의 마음 중추신경을 성령께 드릴 때, 성령께서 하늘을 보시고 느끼시는 그 느낌이 우리 마음에 전달됩니다. 몸은 칼로 째이는 고통을 느낄지라도, 신경이 따뜻하고 향기로운 곳으로 옮겨졌다면 그곳의 느낌을 받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삶의 현장에 대해서는 우리 중추신경을 제거하고 성령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신경만이 의사선생님의 신경처럼 우리 삶을 이끌어갈 것입니다.
날마다의 십자가 연합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는다'고 한 것은, 날마다 마음의 중추신경을 세상에 대한 죽은 자로 여기며 성령께 드리는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죽어지지 않는 마음을 보며 씨름하는 이 과정이 바로 선민의 직업이자 과제입니다. 말씀을 듣고 십자가 복음의 기도를 통해 우리의 중추신경이 이 땅의 삶을 느끼는 몸으로부터 제거되어 성령님께 보내지고 하늘을 느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짜 선민이 되는 길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마음의 신경이 제거되면 감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요?
- ❓하나님의 중추신경과 나의 중추신경이 충돌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 ❓앗수르의 멸망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무엇인가요?
- ❓성령 안으로 마음의 중추신경을 보낸다는 것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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