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엔 하나님, 측면에 사람 (눅6:37-38)
설교 요약
위치와 방향의 전환
비판, 정죄, 헤아림은 행위 이전에 '위치와 방향'의 문제입니다. 이 위치와 방향만 바꾸면 저절로 용서와 주기가 가능해집니다.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습성은 선악과를 따먹으며 생긴 결과로, 이는 마귀를 사랑하고 동조한 데서 비롯됩니다. 이 습성은 사람을 원수로 삼게 만들고, 결국 자신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에덴의 볼록거울, 선악과
에덴동산 중앙의 선악과는 하나님이 임재하심을 상징했습니다. 이는 아담이 하와를 정면으로 볼 수 없고, 볼록거울처럼 하나님을 통해 하와를 바라보아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은 생각하시고 판단하시는 분이셨기에, 아담은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선악과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항상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되심을 보여줍니다.
타락 이후의 중앙 집중
선악과를 따먹은 후, 사람은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스스로 중앙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는 만나는 모든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대한 판단, 헤아림, 비판, 정죄가 뒤따릅니다. 심지어 하나님마저 자신의 판단을 강화시키는 '보조 변호사' 역할로 전락시키게 됩니다.
위치 전환: 하나님을 정면으로
이러한 원죄의 습성을 극복하기 위해 위치를 바꿔야 합니다.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대신, 그 사람과 나란히 옆으로 서고 하나님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하나님이라는 볼록거울에 비친 상대방의 실상을 보게 되며, 이는 용서와 긍휼의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넘치는 공급
하나님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근원된 공급이 강물처럼 흘러들어옴을 느끼며, 이 흐름을 막지 않고 옆으로 흘려보내게 됩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무한한 샘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기에, 우리는 아낌없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하나님을 보는 조준관
하나님을 보는 데는 십자가의 예수님이라는 조준관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죄 사함의 차원을 넘어, 주님과 연합하여 세상에 죽었다는 고백을 통해 주님이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차원이 다른 세계를 느끼게 해주심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을 보고 기쁨으로 나눌 수 있게 됩니다.
비판 대신 기도와 자비
하나님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 옆으로 놓이게 됩니다. 그들의 악행을 볼 때도 분노나 원망 대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비춰진 모습을 통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비를 베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옆 사람을 볼록거울이신 하나님을 통해 볼 때와 내가 정면으로 볼 때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행복의 지름길: 위치 바꿈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비판과 정죄를 피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사람을 옆에 나란히 세우는 위치 바꿈을 통해 우리는 에덴과 같은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지름길이며,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비판과 정죄를 하지 않는 것이 왜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나요?
- ❓에덴동산에서 선악과가 '볼록거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타락 이후 사람들이 '스스로 중앙에 서게 되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하나님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과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 ❓십자가의 예수님을 '조준관'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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