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파에겐 구원 없다 (눅7:1-10)
설교 요약
백부장의 믿음, '실속 없음'에서 비롯되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 이유는, 그의 믿음이 실속 없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속'과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자기 필요를 앞세우지 않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실속차리는 믿음은 성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실속파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실속파'의 세 가지 단계
우리는 흔히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을 '실속파'라고 부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는 세 단계로 나타납니다. 첫째, 자신의 필요만을 채우려는 극단적인 실속파입니다. 둘째, 자신의 필요와 상대방(교회)의 필요를 적절히 협상하며 움직이는 단계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자신의 필요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단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1단계와 2단계에 속합니다.
예수님을 '진면목'으로 파악하는 믿음
백부장의 믿음이 놀라운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자기 필요에 따라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멀리서도 말씀 한마디로 종을 낫게 할 수 있는, 로마 황제와 같은 권위를 가진 분으로 파악했습니다. 이는 계시와 말씀을 산더미처럼 받은 선민들조차 감도 잡지 못한 예수님의 진면목을 이방인 백부장이 파악했다는 점에서 예수님을 놀라게 했습니다.
타인의 필요를 따르는 행동의 동기
백부장이 예수님께 직접 나아가지 않고 장로를 보낸 것은, 자신과 예수님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식민지 백성의 필요를 따라 회당을 지어주고, 사랑하는 종을 위해 번거로운 절차를 감수했습니다. 그의 행동 동기는 항상 다른 사람의 필요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으며, 이는 자기 필요에서 벗어난 행동이었습니다.
'큰 믿음'은 내 필요로부터의 해방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큰 믿음'이라 칭하신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가장 바른 방식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내 필요로부터 빠져나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 필요의 안경을 쓰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한, 예수님은 결국 내가 부리는 종이 될 뿐입니다. 사도들이 부활 후 변화된 것은 전혀 자신의 필요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악된 습성, '내 필요를 내가 느끼는 것'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우리는 '내 필요를 내가 느끼는' 죄악된 습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목마르고 굶주리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에서 필요를 느끼는 습성의 뿌리 자체를 제거하려 하셨습니다. 내 필요를 따라 하나님을 찾는 한, 우리는 그분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십자가, 내 필요에 대한 죽음
우리의 필요에 마음이 묶여 예수님을 보지 못할 때,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분과 함께 연합하여 죽어야 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은 자만이 내 필요에 대해 죽을 수 있으며, 그래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우편에 계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 복음은 자기-주권의 죽음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몸을 통해 느끼는 필요를 내가 채우려는 실속파의 입장에 있는 한, 믿음이 성립하지 않고 구원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내 필요를 내가 느끼는 것 자체가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이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내 필요를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백부장처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백부장의 믿음이 '실속 없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 ❓신앙생활에서 '실속파'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나요?
- ❓예수님을 '진면목'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우리의 '내 필요를 내가 느끼는 것'이 왜 죄악인가요?
- ❓십자가 복음은 우리의 '자기-주권'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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