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교회(I)
설교 요약
부르심의 특별한 의미
누가복음 9장의 오병이어 기적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베드로의 고백과 연결되어 예수님의 교회로 성립되는 부르심의 사건을 보여줍니다. 누가는 교회를 염두에 두고 예수님의 공생애 사건들을 편집했으며, 특히 오병이어 사건을 베드로의 고백 앞에 배치함으로써 교회의 본질이 무엇으로부터의 부르심인지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교회를 출입하는 것을 넘어, 특정 자리에서 떠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빈들로의 부르심
오병이어 사건에서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빈들로 불러내셨습니다. 빈들은 생업에 종사할 수 없고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그들의 먹을 것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심의 내용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먹고 사는 생업의 문제로부터 떠나와, 그 문제를 더 이상 과제로 삼지 않는 상태로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생업의 문제를 염려하지 않고 예수님께 집중하는 자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저주로부터의 해방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더 잘 먹고 잘 입기 위해 세상에서 일하는 것은 창세기 3장의 저주, 즉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고 수고해야 겨우 목구멍에 풀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저주에 매여 사는 삶입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몸의 필요 때문에 움직이는 삶, 이것이 바로 저주받은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바로 이 저주로부터 불러내시기 위함입니다. 먹고 사는 이 육체 때문에 생기는 필요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완전히 책임을 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세상의 필요로부터의 자유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더 이상 '내가 어떻게 먹고 살아야지? 어떻게 입어야지?'와 같은 몸에서부터 나오는 요구에 매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까지도 몸 때문에 생기는 필요에 따른 것이라면, 이러한 모든 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일은 하겠지만, 먹고 사는 육체의 필요에 반응하며 사는 일이 아니라, 영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인가의 판단
교회의 교인들이 목사님, 장로님부터 모두 먹고 사는 것을 문제로 삼고 잘 먹고 잘살자고 이야기한다면, 그 교회는 진짜 교회가 아닙니다. 목사님의 신학적 배경이나 사회적 명망, 교회의 숫자적 부흥만으로는 진짜 교회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누가가 말하는 부르심은 빈들로 불러내셔서 주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몸 때문에 생기는 모든 필요와 요청에 대해 자유로워질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심에 응답하는 마음가짐이며,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진정한 교회의 표지입니다.
부르심에 대한 올바른 응답
부르심은 빈들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애써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비할 수 없는 곳으로 부르시는 것이며, 주님께서 나의 먹을 것, 입을 것, 몸 때문에 생기는 모든 요구와 필요, 인간관계까지도 알아서 인도하고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에 대한 올바른 응답은, 나의 마음이 생업의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빈들로 가서 예수님께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신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목회자 역시 이러한 부르심을 대행하며 성도들을 빈들로 불러내어 예수님께 집중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오병이어 사건이 '교회론'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 ❓누가가 오병이어 사건을 베드로의 고백 앞에 배치한 특별한 의도는 무엇인가?
- ❓'빈들로의 부르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의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 ❓진짜 교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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