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신(殺神)사건의 알리바이 (눅22:47-62)

📖 눅22:47-62시즌I_신약누가복음-1

설교 요약

사건의 재현과 알리바이의 문제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죽이는 전무후무한 살신(殺神)사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자신의 죽음으로 재현하지만, 이는 곧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 재현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건은 시간과 공간에 묶여 알리바이가 중요하지만, 십자가 사건은 인류 전체를 끌어들이기에 우리의 알리바이는 사라집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으로 재현되지 않으면, 나는 가해자로 서서 계속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게 됩니다.

'어둠의 권세'와 우리의 정체성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을 주님은 단순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로 국한하지 않고 **'어둠의 권세'**라고 칭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 2천 년 전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재현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만약 우리가 '어둠의 권세'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알리바이가 사라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둠의 권세'의 본질: 내 소원대로 사는 삶

주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과 대조적으로, '어둠의 권세'는 자신의 소원대로 사는 삶을 특징으로 합니다. 세상 만물은 하나님의 원하심을 표현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관통하지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확정 짓고 그것을 따라 살아가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삶의 영역에서 몰아내고 죽이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부인과 우리의 신앙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 또한 '어둠의 권세'의 특징과 연결됩니다. 베드로는 능력의 예수님은 알았지만, 십자가를 향해 가는 무력한 예수님은 부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능력의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거듭 죽이는 행위의 재현입니다.

알리바이를 얻는 유일한 길: 십자가로 뛰어들라

십자가 사건에서 가해자의 입장에 서는 것을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죽이는 사건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살신 사건에서 유일하게 알리바이를 제공받는 길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로 뛰어들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과 함께 연합하는 것뿐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 하나님의 원의 돌파구

십자가에서 나의 소원이 죽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원하심이 돌파구를 찾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어둠의 권세'라면, 십자가에서 내 소원이 죽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계획하신 참된 '나'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 자리에서만이 살신 사건에 대한 유일한 알리바이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본문 도입부

유대지도자들이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수순을 밟으면서 드디어 십자가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참으로 특이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그 죽음이 내 사건으로 재현되듯이, 하나님이신 예수를 죽이는 일 또한 가해자의 입장으로 재현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살신사건에 대한 알리바이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지요. 살신(殺神)사건의 알리바이 (눅22:47-62) 47.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48.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49.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 50.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52. …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