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적이라서 이룰 것은 전무하다 (누가복음 18장 15절~17절)
설교 요약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가까이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선언하신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격변과 함께 다윗 왕국의 재현을 기대하며, 죽을 각오로 전쟁에 뛰어드는 '대장부'들의 나라를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며, 그들의 기대를 정면으로 부정하셨습니다. 이는 자기-주권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오해와 예수님의 반박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린 아기들을 데려온 어머니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한 중요한 때에, 정치적 사회적 활동과는 무관한 갓난아기들과 어울리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현장에서 자신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열정적으로 개입하여 성취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의 생각을 파괴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열정적인 활동성이 아닌, 오히려 제자들이 꾸짖었던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가 되어야만 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갓난아기의 상태: 세상과의 단절, 하나님과의 밀착
갓난아기는 엄마 뱃속과는 다른 세상에 태어났지만, 세상에 대한 의식의 스위치가 꺼져 있고 오직 부모의 품에 밀착되어 있습니다. 즉, 세상에 존재하지만 세상과 단절된 상태이며, 모든 필요를 부모에게 의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기 위해 이와 같이 세상과의 단절과 하나님과의 밀착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불평 없이 인내하라는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합니다.
활동성의 역설: 나의 활동성 제로, 하나님의 활동성 극대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은 나의 활동성이 제로가 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나의 활동성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으려 할 때, 인생은 오히려 꼬이고 뒤틀리게 됩니다. 건강이나 돈 문제 등 삶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나의 활동이 늘어나는 것은 제자들이 어린아이를 막았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님 나라 안으로 끌고 들어가, 하나님의 활동성이 극대화되도록 맡길 때,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연쇄 사건과 십자가의 의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연쇄 사건은 인간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비활동적인 상태를 통해 일어난 일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으로 뻗어나갈 나라의 확장을 기대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활동성 제로의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는 갓난아기가 세상에 대해 취하는 단절의 상태를 재현시키는 것이며, 이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면 구원도, 영생도, 복음의 은총도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최고의 기도와 찬양: '응애, 응애'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하여 우리에게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기도와 최고의 찬양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인 **'응애, 응애'**입니다. 이는 전적인 의탁과 무능력의 고백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나라 안으로 끌고 들어가, 나의 활동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활동성이 극대화되도록 맡길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나의 활동성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 ❓삶의 문제 앞에서 나의 활동이 늘어날 때,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나요?
- ❓예수님께서 '활동성 제로'의 상태를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그리스도의 연쇄 사건이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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