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세상 비관한 자살과 십자가 죽음 (누가복음 21장 29절~38절)
설교 요약
자살은 세상을 비관해서 일어납니다. 십자가 죽음 역시 세상에 대한 비관이 전제됩니다. 자살 충동은 ‘더 이상은 세상 안에 머물 수 없다’는 강렬한 느낌이며, 이는 세상의 본질에 대한 가장 가까운 체감입니다.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신앙적으로 철이 들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떠나셨듯, 세상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비관이야말로 가장 진실에 가까운 순간입니다.
헛된 바람과 마귀의 게임
세상에서 잘되거나 성공하려는 바람은 마귀가 만들어낸 게임입니다. 게임 중독자가 삶을 잊듯, 세상의 느낌에만 찌든 사람은 하나님과 하늘의 있음을 잊습니다. 시간과 공간 바깥의 천국에 대한 느낌이 전무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관이 정답인 세상에서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망상입니다. 세상의 실제는 비관이기에, 자살 충동처럼 한순간도 세상에 있고 싶지 않은 마음 상태가 가장 올바른 깨달음입니다.
십자가 생활화와 세상에 대한 비관
십자가 생활화가 어려운 이유는 마음에서 세상이 좋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세상이 아깝고 그립다면, 교리적으로는 수긍해도 실질적인 십자가 생활화는 불가능합니다. 가장 완벽한 십자가 생활화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과 같은 세상에 대한 비관이 동반될 때 가능합니다. 베드로전서의 말씀처럼 육체와 삶은 마르고 떨어질 풀과 꽃과 같으며, 오직 주의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전도서 역시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징조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가 싹을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듯, 세상의 징조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예루살렘 멸망, 소요, 전쟁, 지진, 기근, 전염병 등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 자체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느끼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세의 말씀을 하신 이유는 단순히 예고가 아니라, 이러한 비관적 세상에 마음이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본질이 비관적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둔함과 세상의 염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는 말씀은 중요합니다. 생활의 염려는 이 세상의 있음을 느끼는 증거이며, 세상 있음의 느낌이 커지는 것을 예수님은 마음이 둔해진다고 표현하셨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취해 뒷바라지를 위해 애쓰는 것처럼, 자녀에 대한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마음이 둔해진 상태입니다.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제정신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느끼는 삶
본래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느끼는 삶은 방탕함과 술취함, 생활의 염려가 없는 상태입니다. 배우자나 돈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에 취해 돈을 위한 정직함과 근면함은 하나님 보시기에 방탕함이고 술취함입니다. 돈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과부처럼 돈에 대한 느낌에 죽고, 하나님에 대한 느낌만 갖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있음을 느낌으로부터 삶이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 탈출과 십자가의 의미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나아가 접촉이 일어나고 하나님에 대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탈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별세 사건은 세상 느낌에 절여진 우리를 탈출시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도저히 마음을 붙이고 안정적으로 살 수 없는, 본질적으로 비관적인 곳임을 깨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처럼 세상에 대해 비관하는 것이 정상이며, 이것이 세상의 본질에 대한 가장 정확한 깨달음입니다.
세상 비관과 십자가 붙잡음
세상에 대한 비관은 이론적 앎이 아닌 마음의 체감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세상 비관을 통해 세상 바깥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느낄 때, 마음에서 하늘과의 접촉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느낌이 나를 지배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에 갇혀 있는 곳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아름답게 보는 것입니다. 자녀, 배우자, 내 몸의 상태를 볼 때도 하나님의 주권을 보는 것이지, 세상을 직접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자살 충동을 갖는 사람이 느끼는 만큼 세상의 본질이 비관적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세상이 비관적이라는 것이 정말 진실인가요?
- ❓세상이 비관적이라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요?
-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나요?
- ❓'마음이 둔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나요?
- ❓세상에 대한 비관과 십자가를 붙잡는 것이 어떤 연관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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