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따름은 예수 의식하기 (누가복음 9:61~62)
설교 요약
예수 따름은 '의식하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 없이, 예수님을 두드러지게 느끼고 특별히 염두에 두는 것, 즉 '의식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는 감각적 의식이 아닌,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가장 돌출된 분으로 느끼는 심리적 의식을 의미합니다. 가정, 회사 등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특별히 의식할 때 비로소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뒤돌아보는 자의 위험성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하고도,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는 등 사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는 태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고랑을 똑바로 만들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해야 하듯, 예수님을 따르려면 시선이 예수님께 고정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시선, 즉 의식이 예수님께 고정되지 않으면 예수 따름은 중단됩니다.
마음의 시선, '의식'의 중요성
예수님께서 문제 삼으시는 것은 육체의 시선이 아닌 마음의 시선, 즉 '의식'입니다. '의식'은 어떤 것을 두드러지게 느끼거나 특별히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예수님을 마음속에서 돌출된 분으로 느끼고 특별히 염두에 두는 것의 지속입니다. 이 의식이 중단되면 예수 따름도 중단됩니다. 예수님보다 가족을 더 두드러지게 의식하는 순간, 예수 따름은 중단됩니다.
그리스도 통로를 따른 동일시
예수 따르기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통로의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이 통로는 예수님의 버림받으심, 죽으심, 부활, 승천의 연쇄적 사건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세상에 물든 나의 마음을 버리고 버려지신 예수님과 나를 동일시해야 합니다. 이는 자기 부인이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과 나를 동일시하며 예수님의 통로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주권의 실현
예수님을 의식함으로써 마음이 하나님으로 채워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떠난 세상일에 대해 뜻과 주권을 발휘하십니다. 마치 드론이 하늘에서 땅을 촬영하듯,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한 입장과 태도, 행위가 나타납니다. 돌로 치는 사람들을 원수가 아닌 불쌍한 자로 보며 용서하는 스데반 집사님처럼,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멈추지 않는 예수 의식의 반복
예수 따르기는 예수님을 의식하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남겨둔 문제나 마음에 걸리는 일들을 다 마친 후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들을 남겨둔 채 우선 예수님을 의식하기에 몰두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세상을 두드러지게 느끼는 자신을 부인하며 십자가를 짐으로써 자기 십자가를 집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을 두드러지게 느끼게 되며, 하나님의 시선에 의식을 맡기게 됩니다.
하늘나라가 되는 만남
사람을 만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마음에서 두드러지게 의식되었다면 이미 죄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예수 따르기를 시작하고, 예수님과 나를 동일시할 때 내 마음에서 그 사람보다 예수님을 더 두드러지게 느끼게 됩니다. 나의 마음이 떠난 자리에는 하나님의 뜻과 주권이 내려오게 되고, 그 결과 이 사람과의 만남의 자리가 하늘나라가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예수님을 '의식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가족이나 사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왜 잘못되었나요?
- ❓그리스도 통로를 따라 예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을 두드러지게 의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 ❓하나님의 뜻과 주권이 나의 삶에 어떻게 실현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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