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길 섭리와 막대길 섭리 (느헤미야 4:1~23)

📖 느헤미야 4:1~23시즌II_구약느헤미야-2

설교 요약

하나님의 섭리: 손길과 막대기

하나님은 세상 만물에 관여하시며 이를 섭리라 합니다. 이 섭리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손길 섭리로,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조의 질서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막대길 섭리로, 인간의 더러움 때문에 하나님의 손길이 직접 닿기 어려워 막대기로 징계하시는 상황을 말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앗수르 침공이나 남 유다의 바벨론 멸망은 모두 막대길 섭리의 예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섭리하지 않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막대길 섭리의 특징과 깨달음

막대길 섭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내가 손대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탁탁 치시는 것입니다. 앗수르나 바벨론처럼 세상적으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조차도 영원한 구원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손길 섭리에 얻어맞는 편이 낫습니다. 만약 내가 소망과 열정을 품고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막대길 섭리가 내 손을 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를 빨리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손길 섭리가 임할 때 비로소 혼돈과 흑암이 물러가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열매가 충실한 질서 잡힌 삶이 가능해집니다.

방해 공작과 성벽 쌓기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이방 족속들의 위협 속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를 비롯한 사방의 위협은 성벽 쌓기를 막으려는 사탄의 방해 공작입니다. 성벽 쌓기를 방해하고 위협을 극복해야 하나님의 손길 섭리가 임할 수 있습니다. 만약 두려움에 굴복하여 성벽 쌓기를 포기한다면, 하나님의 막대길 섭리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우리의 더러움 때문에 막대기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벽 쌓기

성벽 쌓기는 '세상에 대한 벽을 쌓는 것'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기쁨과 만족을 삼으려 하지 않고,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과 만족만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 작업을 하셨듯, 세상의 가치관이 우리 삶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벽을 쌓아야 합니다. 이 단절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 즉 우리의 마음은 하늘의 물을 공급하는 파이프가 되어 하나님의 기운이 넘쳐나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기운이 성벽 바깥의 삶으로 퍼져나가며, 동서남북 이방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문제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믿음

문제 앞에서 '흙무더기가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말하며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는 마귀의 의도입니다. 사탄은 문제를 급박하고 중대하게 보이도록 유도하여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문제에 먹혀 벽 쌓기를 중단하게 만듭니다. 벽 쌓기를 중단하면 하늘 기운이 내려와 쌓일 수 없고, 하나님의 손길이 닿을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처럼 한 손으로는 일을 하고 한 손에는 병기를 잡는 자세로, 즉 중무장하고 벽을 세우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겠다는 결심을 할 때, 하늘 기운이 차고 넘쳐 모든 문제에 하나님의 손길이 닿을 것입니다.

변방의 위협과 십자가 생활화

성 바깥의 유다 사람들이 변방의 위협을 두려워하며 성벽 쌓는 이들을 탓하듯, 우리도 돈 문제, 자녀 문제 등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 '지금 성벽을 쌓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는 영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이방의 어떠한 압력과 위협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벽을 쌓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세상 문제에 대해 죽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임할 때까지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며,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을 끌어안음으로 발생하는 더러움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끌어안는 온전한 상태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손길 섭리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 섭리를 받는 삶

지금까지 돈 문제가 생기면 그대로 문제를 끌어안고 두려워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마귀의 촉구에 넘어가 벽 쌓기를 중단하고 문제를 끌어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끌어안는 것이 온전한 상태인데,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을 끌어들여 더러워지면 하나님께서는 손을 대실 수 없고 막대길 섭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창과 칼을 들고 굳건히 벽 쌓기를 했듯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이 세상에 대한 벽 쌓기를 통해 내가 등을 돌린 모든 문제에 하나님의 손길 섭리가 닿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두려움이 임할지라도 벽 쌓기를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하늘 기운이 차고 넘쳐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손길 섭리가 닿는 창조의 장소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느헤미야 4장 1절부터 23절까지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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