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믿어도 죽음이 두려운 이유 (느헤미야 6:1~19)

📖 느헤미야 6:1~19시즌II_구약느헤미야-2

설교 요약

두려움의 보편성과 종교의 한계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후 세계를 믿는 종교인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 적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논리적으로 당연해 보이는 '서울대 합격 후 졸업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3'의 비유와 상반되는 결과입니다. 천국이 이 세상의 모든 복락보다 크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우리는 왜 죽음이라는 '세상 졸업'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이는 우리가 여전히 육체 연관성 안에서 마음의 공백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의 근원: 마음의 공백

두려움은 언제나 마음의 공백에서 시작됩니다. 돈, 건강, 자녀, 혹은 국가 안보 등 무엇이든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 근본 원인은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위기감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보듯, 두려움은 모든 가능성과 장점을 무력화시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움 자체와 싸워야 하며, 골리앗을 상대하기 전에 내 마음의 두려움을 먼저 없애야 합니다.

성벽 재건과 두려움의 극복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원수들은 느헤미야를 죽이려 하거나 내부 분열을 시도하며 그를 두렵게 하고자 했습니다. 성벽 쌓기의 완성은 곧 자기-주권의 죽음, 즉 육체 연관성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육체로 인해 발생하는 관계들로부터 만족과 기쁨을 찾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이러한 단절 과정에서 세상 것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나지만, 이를 하늘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바꾸는 것이 믿음입니다.

천국은 지금, 마음의 채움

천국은 죽은 후에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의 공백을 천국으로 채우라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마음을 천국으로 채우지 못하면 죽은 후에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할 때 하늘을 보았던 것처럼, 마음이 천국으로 채워진 자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천국으로 채워진 삶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주님의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십자가 생활화: 날마다 죽는 삶

이 땅에서조차 하늘나라가 임하는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생활화가 필수적입니다. 이는 일순간에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것과 같으며, 육체 연관성에 대한 벽 쌓기를 통해 죽는 것입니다. 루터의 말처럼 '날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날마다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하늘을 향한 기대와 희망으로 전환하고, 주님과 하나 되는 성령님을 통해 마음을 채우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완성된 십자가 복음 신앙의 길입니다.

본문 도입부

느헤미야 6장 1절부터 19절까지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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