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이 아무리 막아도 상관없는 인생(살전 3:1~13)

📖 살전 3:1~13시즌II_신약데살로니가전후서-2

설교 요약

막힘의 신앙적 의미

우리는 삶에서 '안 됨', '방해', '지연' 등 다양한 형태의 막힘을 경험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은 이러한 막힘이 신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겪는 극심한 박해와 환난 속에서 그들의 믿음이 흔들릴까 염려했습니다. 그는 직접 방문하고 싶었지만 사탄이 막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훌륭하게 믿음을 지켜냈고, 사도 바울의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막힘 자체가 아니라, 막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믿음이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사탄의 막음과 성령의 막음

사탄이 막는 경우와 성령께서 막으시는 경우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지 못한 것은 사탄의 막음으로 표현되었지만, 그의 아시아 선교 계획이 막힌 것은 성령께서 막으신 것으로 기록됩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성령의 막으심으로 인해 유럽 전도가 시작되었고, 이는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굳건한 믿음을 가진 교회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에 의한 막힘은 사탄의 역사이며, 이는 마음이 땅에 붙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 십자가의 원수가 아닌데도 일이 막힌다면 성령께서 다른 길을 예비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막힘의 기준: 십자가

우리가 경험하는 막힘이 성령의 막으심인지 사탄의 막음인지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마음이 땅에 대해 죽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 즉 마음이 땅을 좋아하고 땅에 붙어 있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막힘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 것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땅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십자가 예수님을 붙잡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 일을 방해하며 마음을 땅에 붙게 합니다.

권면을 통한 막힘의 극복

성령이 막으시든 사탄이 막든, 권면을 듣는 자들에게는 결과적으로 막힘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오라는 부름을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받아들이고 절대 기준으로 붙잡는 사람들에게 막힘은 더 이상 막힘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하늘과 통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굳건히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하늘로 통하면 이 땅에서의 막힘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막힘 없는 인생의 비결

우리의 마음과 하나님 사이에 막힘이 있는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막힘은 이 세상을 향한 바람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고 싶어 했지만 가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설교의 재료로 사용하시기 위한 섭리였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막힘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최선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막힘처럼 보이는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그것이 내가 뚫어야 할 막힘이라면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실 것이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막힘이 아닌 통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우리는 막힘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붙잡는 삶

막히듯이 답답할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 마음과 하늘 사이를 뚫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막힘처럼 보이는 모든 답답한 현상이 결국은 형통임을 체험하고 기쁨과 감사를 이어가는 삶이 바로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사방이 막히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은 막힘이 아닙니다. 내가 뚫어야 할 막힘이라면 하나님께서 나를 장갑 삼아 뚫고 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막힘없는 인생, 막힘처럼 보이는 모든 일이 아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본문 도입부

<사탄이 아무리 막아도 상관없는 인생>의 줄거리 : 극심한 박해로 인해서 데살로니가를 떠난 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재방문을 원했지만 결과적으로 못 가고 맙니다. 사탄이 막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사도 바울의 염려처럼 데살로니가로 다시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왜냐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너무나 훌륭하게 믿음을 잘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전서 3장 1절부터 13절까지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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