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첫 번째 이인칭 (딤후 2:14~26)
설교 요약
신앙적 말다툼의 본질
신앙적 말다툼은 하나님을 제3자로 격하시키는 행위입니다. 마치 정치인들이 대통령을 두고 논쟁하듯, 우리는 하나님을 객관적인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이론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제3자처럼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그분은 언제나 우리 앞에 계신 '당신'으로서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제3자로 놓고 논쟁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며, 이는 듣는 이들까지 망하게 하는 유익 없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은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화급을 다투는 일입니다.
하나님, 언제나 최우선의 '당신'
우리의 모든 생활 현장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첫 번째 이인칭, 즉 '당신'으로 의식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배우자를 대하든, 회사에서 상사를 대하든, 그들보다 먼저 하나님을 '당신'으로 인식하고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배우자를 바라보는 나를, 상사를 대하는 나를 모두 지켜보고 계십니다. 따라서 배우자나 상사가 첫 번째 이인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생활 현장에서 하나님이 나의 첫 번째 이인칭이 되시고 하나님과 연결되는 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하나님을 이인칭으로 부르고 연결되기 위해서는 '깨끗한 마음'이 필수적입니다. 마음이 더러워진 상태에서는 아무리 하나님을 불러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마음의 더러움은 하나님보다 다른 대상을 첫 번째 존재감이나 좋음의 대상으로 삼을 때 발생합니다. 직장에서의 승진, 가정에서의 소망 등 하나님 외의 것을 우선시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더러워집니다. 하나님을 첫 번째 이인칭으로 부르는 것은 마음이 깨끗한 상태에서만 가능합니다.
십자가 생활화: 마음의 정결함으로 나아가는 길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내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십자가 생활화가 필요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는다는 것은 생활 현장의 있음과 좋음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일인칭으로 연합하여 생활 현장에 대해 죽은 자라는 자아의식을 가질 때, 우리의 마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하나님만을 유일한 있음과 좋음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처럼 깨끗해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이인칭으로 부를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 살아있는 연결을 이루게 됩니다.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되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연결된 사람은 생활 현장에서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용하시지만, 그 쓰임에는 인격적 관계의 유무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나 빌라도처럼 하나님과 관계없이 천하게 쓰임 받는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십자가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선한 일에 귀히 쓰임 받는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은 우리가 귀히 쓰임 받느냐, 천하게 쓰임 받느냐를 결정합니다.
하나님을 제3자처럼 말하는 유일한 경우
하나님을 제3자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망령된 행위이지만,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연결된 자가 다른 사람에게 '모든 생활 현장에서 하나님을 너의 최우선적인 이인칭으로 관계하며 연결되라'고 권고할 때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최우선적으로 만나 연결된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권고할 수 있으며, 이때 비로소 하나님을 제3자로 언급하는 것이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생활 현장에서 첫 번째 이인칭 되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연결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신앙적 말다툼은 왜 하나님을 제3자로 만드는가?
- ❓가정이나 직장에서 하나님을 첫 번째 이인칭으로 삼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 ❓마음이 더러워지는 구체적인 예시는 무엇이며,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는가?
- ❓십자가 생활화는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하나님과 연결되어 귀히 쓰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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