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날며 땅살기 (레14:1-9)

📖 레14:1-9시즌I_구약레위기-1

설교 요약

죄악의 상징, 문둥병

부정함은 하나님과 끊어진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형벌 중 가장 큰 형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죄악된 삶의 가장 대표적인 비유로 문둥병을 지목하셨습니다. 문둥병은 그 옛날 천형으로 여겨질 만큼 흉측하고 집안을 망하게 하는 병이었으며, 이는 눈에 쉽게 파악되지 않는 추상적인 죄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문둥병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정결함을 회복하고 사는 길입니다.

정결케 하는 첫 번째 절차

문둥병자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제사장은 두 마리의 살아있는 새를 가져와 정결케 하는 절차를 진행합니다. 진 바깥에서 흐르는 물을 질그릇에 담고, 한 마리 새를 그 위에서 잡아 피를 물에 섞습니다. 나머지 새는 백향목 가지, 우슬초, 홍색실과 함께 피와 물이 섞인 질그릇에 담갔다가 문둥병자에게 뿌립니다. 이 절차는 인간의 본래적인 죄악이 무엇인지, 왜 우리의 인격이 문둥병처럼 흉악해질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줍니다.

질그릇과 하늘 새의 의미

질그릇은 흙으로 돌아갈 육체를 상징하며, 물은 육체의 생명력을 나타냅니다. 여기에 하늘을 나는 새의 피가 떨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의미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내려와 질그릇 같은 육신을 입고 물과 피를 흘리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피와 물을 뿌리고 살아있는 새를 날려 보내는 것은, 죄로부터 정하게 되었으니 하늘을 나는 새처럼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문둥병자가 정결함을 입고 다시 살아남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골로새서의 말씀처럼 살아야 합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 즉 가정의 문제나 세상적인 일들에 마음을 담는 것이 문둥병처럼 흉악한 죄악입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는 대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대화하며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생각하지 말고 대화하라는 것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백향목과 우슬초의 삶

백향목은 위엄과 권위를, 우슬초는 낮고 천한 것을 상징합니다. 땅에서 살아가는 삶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벌어지지만, 우리는 모두 하늘을 나는 사람들입니다. 우슬초 같은 처지에서도 위엣 것을 찾고, 백향목 같은 풍부함 속에서도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 제로의 마음이 될 때 하늘과 만나고 하늘의 것을 찾게 됩니다. 백향목을 좋아하지도, 우슬초를 싫어하지도 않는 상태가 바로 하늘을 찾는 삶입니다.

홍색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음

홍색실은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홍포, 즉 그분의 신분과 이름을 상징합니다. 질그릇 같은 육체에 하늘 새의 피가 떨어져 생명을 얻으신 예수님처럼, 우리는 예수님으로 옷 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백향목이든 우슬초든, 어느 모습으로 살아가든 마음은 하늘을 나는 사람들로서 땅을 살아가는 것이 죄악을 벗어난 참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이 땅에 하늘의 기운을 번져나가게 합니다.

무욕이 대욕

하늘을 갖게 되면 세상에서 바랄 것이 없기에 무욕한 사람이 됩니다. 이는 안 가져서 무욕한 것이 아니라, 진짜 가져야 할 것을 가졌기에 세상에 대해 욕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을 마음에 품은 사람은 백향목의 높이나 우슬초의 비천함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윗처럼 왕이 되든, 순교자의 자리에 서든, 하나님이 정하신 모습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하늘을 먼저 가지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는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하늘 날며 땅살기 레위기 14장 1절부터 9절까지 지금 우리는 계속해서 정결법에 관한 하나님의 규정들에 대해서 생각을 합니다. 부정하다 라고 하는 그러한 선고라고 할까요? 제사장이 부정하다 부정하다... 그 부정하다는 뜻은 거듭 말씀드립니다마는 '하나님과 끊어진다'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 라고 아예 못 박아 버리는 겁니다. 물론 그 부정함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절차를 따라서 다시 정결함으로 회복이 됩니다마는 어쨌든 부정하다는 선언을 듣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의절'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도저히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이 형벌 중에 가장 큰 형벌이지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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