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둥실 뱃놀이 (레17:1-16)

📖 레17:1-16시즌I_구약레위기-1

설교 요약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의 의미

레위기에서 피의 식용을 금지하는 명령은 단순히 부정함이나 정결함에 관한 것을 넘어섭니다. 먹기 위해 동물을 잡는 행위조차 성막 앞에서 하도록 명하신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에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마치 집을 도배하듯 빈틈없이 삶을 하나님으로 채우는 복된 삶의 방식입니다. 피는 생명과 일체이기에, 피를 먹는 행위는 생명을 명령받은 존재가 스스로 생명을 명령하는 자로 바뀌는 것, 즉 자기-주권의 죽음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던져진 존재'와 '던지는 자'의 딜레마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을 '던져진 존재'로 묘사합니다. 스스로 태어나거나 살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내던져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동성만으로는 인간의 가치가 축소된다고 보아, 인간을 '던지는 자', 즉 자신의 비전과 목적을 향해 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명령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능동적인 자기-주권적 삶의 태도를 피를 먹는 행위, 즉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는 마치 자살과 같이, 생명을 명령받은 존재가 스스로 생명을 제어하려 드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삶: 물살에 순응하는 뱃놀이

예수님의 삶은 이러한 자기-주권적 기획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세상의 기대를 받으셨지만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셨고, 십자가 앞에서 제자들조차 통솔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무력함이나 체념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물 흐르듯이 흘러가신 것입니다. 빌라도 앞에서 자신을 죽이거나 살릴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아시고,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를 믿으며 뱃놀이하듯 순응하셨습니다. 이는 생을 명하신 분의 명령에 따라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감사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섭리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고 죽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관장이기에, 그 사이의 삶 역시 내가 살아서 될 것이 아니라 흐르듯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감사입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라는 물살을 타고 뱃놀이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이 우리를 실패했다고 손가락질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를 이끌어간다면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피를 먹는 것'과 '하나님과의 대적'

지금의 상황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개선하려 하거나, 자신의 계획대로 삶을 바꾸려 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현실을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판 없이 창조가 일어나냐'는 질문은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해보지 못한 자의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며 감사함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진정한 뱃놀이가 될 것입니다.

뱃놀이하는 삶의 특징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400회 이상 반복될 정도로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 생을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오히려 자발성을 가지고 수동성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눈앞에 좋지 않게 보이는 현실이라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나아가야 합니다. 컴맹에게 프로그램을 가르쳐주시듯, 하나님의 창조적인 섭리는 하나님의 물살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계획하지 않고, 기획하지 않고, 개선하려 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하루는 두둥실 두리둥실 뱃놀이가 될 것입니다. 이 뱃놀이하는 삶을 통해 우리 자신과 가정이 변하며, 세상 속에서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두리둥실 뱃놀이 레위기 17장 1절부터 16절까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두리둥실 뱃놀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뱃놀이.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내가 타고 있는 배가 그 흐름을 따라서 흘러가도록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 이게 뱃놀이 아닙니까? 그리고 또 아니면 물살이 정지된 곳에서 평화롭게 물 위에 배를 띄워놓고 정말 시도 읊고 시조도 읊고 또 술도 한잔씩 해가면서 옛날에 한량들이 그러면서 또 옆에는 기생을 앉혀놓고 그렇게 흥겹게 풍류를 즐겨가면서 놀던 그런 뱃놀이. 이걸 연상하시면 되지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레위기의 내용은 피의 식용을 금지하는 내용입니다. 그에 앞서서 먹기 위하여 잡는 소, 제사로 드리는 소가 아니라, 제사로 드리는 양이 아니라, 먹기 위해서도 소를 잡고 양을 잡을 것 아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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