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곤고함에서 행복함으로 (로마서 7:14~25)
설교 요약
곤고함의 정체: 하나님과의 보조 불일치
사도 바울의 유명한 고백,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단순한 철학적 탄식이 아니다. 이는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체험적 고민이며, 75억 인구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바울의 고민은 “나는 왜 살아계신 하나님과 보조를 맞출 수 없을까?”이다. 하나님은 모든 삶의 현장에서 살아계시며 우리의 모든 사건과 과제에 대한 생각과 뜻을 가지고 계신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이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자동적으로 세상의 기준을 통해 해답을 찾으려 한다. 하나님께 보조를 맞추는 것이야말로 참된 문제 해결의 길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순종하는 것의 괴리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기에 보조를 맞출 수 없다고 핑계한다. 그러나 율법은 이미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밝히 드러내고 있다. 율법이 신령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율법대로 살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음욕을 품는 것과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왼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을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죄를 짓는다. 바울은 이를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라고 표현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그것에 순종하는 것 사이의 괴리를 의미하며, 우리의 인격적 체질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육신에 매인 죄의 노예 상태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다’는 것은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영이신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기는커녕, 육신과 보조를 맞추는 동안 하나님과 어긋나 버렸고, 그것이 체질화되어 버렸음을 의미한다. 영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뜻이 알려져도 말과 행동으로 옮기며 보조를 맞춰 살아가는 일이 인격적으로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인격적 체질 때문에 우리는 곤고함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문제를 알고 계시고 뜻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를 따르지 못하는 괴리감 속에서 바울은 미칠 지경이었다.
곤고함의 해답: 예수 그리스도
사도 바울의 탄식,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에 대한 해답은 25절에 나타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바로 이 곤고함을 극복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육체 때문에 하나님께 보조를 맞춰드리지 못하는 이 문제를 예수님이 극복하게 해주셨다. 이 곤고함을 모르면 예수님을 믿는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이 곤고함을 느끼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이 되신다. 육체가 있어서 삶을 살기에 육체를 죽일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인정할 때, 마음은 육체를 따르지 않게 된다.
십자가 생활화: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는 삶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육체가 없는 것 같은 상태가 된다. 이때 마음은 여전히 비어있지만, 육체 대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게 된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삶의 모든 현장에서 십자가를 기억하게 하신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육체가 아닌 영을 따르게 된다. 이전에는 마음을 가족이나 돈으로 채우려 했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만나시는 대상, 즉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우게 된다. 이것이 십자가 생활화이며, 곤고함이 행복으로 변하는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는 길이다.
성령의 법과 율법의 성취
성령의 법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의 길을 내 마음의 갈 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길이 내게 받아들여지게 하신다. 삶의 현장에서 계속 십자가를 바라볼 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보조를 맞추게 된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따를 때, 모든 율법의 요구가 마음에서 입으로 행동에서 다 지켜지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조를 맞추는 삶이다.
감사와 죄의 법 사이의 충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하나님께 감사하고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고백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하나님께 보조를 맞춰드리는 준비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육신이 죽을 때까지 이 곤고함은 이어진다. 속사람은 하나님의 보조를 맞춰드리고자 하지만, 육체를 따르는 체질 때문에 계속 충돌이 생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십자가를 끊임없이 붙잡고 나가야만 한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사도 바울이 말하는 '곤고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나요?
- ❓하나님과의 '보조 맞추기'는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다'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곤고함'의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 ❓십자가 생활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나요?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