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화복의 주관자' 신앙의 음지 (룻기 1:1~22)

📖 룻기 1:1~22시즌II_구약룻기-2

설교 요약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시지만, 이 신앙에는 깊은 음지가 존재합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덮듯, 이 음지는 우리의 신앙을 덮어 참된 의미에 도달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기쁨 대신 우울과 원망이 커지고, 삶은 나아지기보다 더욱 어려워지는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는 신앙의 양지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의 참담한 현실

룻기의 주인공 나오미는 기근을 피해 모압 땅으로 이주했으나,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재산마저 소진하는 참담한 결과를 맞았습니다.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자신을 '나오미'(기쁨) 대신 '마라'(괴로움)라 불러달라고 합니다. 이는 전능자가 자신을 심히 괴롭게 하셨다는 고백이며, 자신의 모든 비참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징벌 때문이라고 철두철미하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사화복’ 신앙의 음지

나오미의 신앙은 하나님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지만, 그 결과는 늘 괴로움뿐이었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 재산이 소진된 상황은 며느리들에게도 민망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는 생각과 의지로는 하나님을 붙잡지만, 마음은 세상 것을 붙잡는 상태에서 비롯됩니다. 세상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생각으로 붙잡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괴로움이 증폭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음지에 머무는 상태입니다.

초대교인들과 나오미의 차이

초대교인들은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집과 가족을 잃었음에도 그들은 십자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자체를 복으로 가졌기 때문입니다. 반면 나오미는 하나님을 생사화복의 주관자로만 알았을 뿐, 그 복 자체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심으로 삶 자체가 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에, 그녀는 괴로움에 머물렀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양지로의 전환

나오미의 신앙과 우리의 차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마음의 괴로움을 주는 세상의 것들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세상 것을 붙잡은 상태에서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을 때,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늘이 생깁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하나님 자신을 복으로 갖게 되면, 그 하나님께서 생사화복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과정에 우리를 동행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복으로 갖는 신앙

우리에게 비록 괴로운 형편이 주어져 있을지라도, 진짜 복되신 하나님 한 분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복을 능가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오미가 세상의 의지처를 모두 잃고 괴로워했던 것은, 이제 진짜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생활화를 통해, 우리는 생사화복 주관자 신앙의 음지에서 벗어나 양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사화복을 뛰어넘는 복 자체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동시에 그럼으로 인간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이처럼 너무나 소중하고 또 당연한, 하나님께서 '생사화복의 주관자'라는 신앙에 그늘이 있습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를 덮는다는 말처럼 그 그늘이 너무 커서 벗어나기가 좀처럼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음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하나님께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는 신앙도 그 참 내용에 도달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생사화복의 주관자’ 신앙의 음지(룻기 1:1~22)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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