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칼 (막14:66-72)
설교 요약
이순신 장군의 칼과 베드로의 부인
아산 현충사에 보관된 이순신 장군의 두 자루 칼은 단순한 무기가 아닌,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과 통곡의 눈물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 칼들은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와 최고의 도공이 만든 정교함에도 불구하고, 실용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무를 썰거나 배추를 다듬는 데 전혀 쓸모없는 이 칼이 나라의 보물이 된 것처럼, 예수님 역시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실용성을 제공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한 보물이 됩니다.
실용성 제로의 예수님을 발견하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단순히 두려움이나 신앙의 나약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십자가를 향해 가는 예수님에게서 자신의 인생을 위한 실용성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병 안 걸리고 오래 살거나, 나라의 독립을 이루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는 등 자신이 꿈꾸던 인생의 목표에 예수님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실용성이 제로인 예수님을 발견했을 때, 베드로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속에 보존된 예수님
아이러니하게도, 베드로가 예수님의 실용성을 부인했을 때, 예수님 자체가 그의 마음 한복판에 남았습니다. 마치 무 하나 썰지 못한 채 유리 상자에 담겨 보관된 이순신 장군의 칼처럼,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속에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신앙이란 바로 이처럼 예수님의 실용성이 없음을 발견하면서도, 예수님 자체가 마음에 보존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은 우리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 자체로 마음에 보물이 됩니다.
역설적인 사랑과 통곡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용적인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아셨고, 동시에 실용성 제로인 예수님이 그의 마음에 보물로 남을 것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내가 이 땅 위에서의 네 인생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데도, 네 마음 안에는 내가 보존되어 있구나!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서야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역설이 여기에 있습니다.
참 신앙으로 나아가는 길
참 신앙은 실용적인 예수님을 부인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업의 성공, 자녀의 양육, 건강 등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예수님을 십자가를 통해 부인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님 그 자체가 순수하게 보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이 질그릇에 보배를 담았다고 고백한 것처럼, 실용성이 제거된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귀한 보물이 됩니다. 이순신 장군의 칼이 단순한 무기가 아닌 나라의 보물이 된 것처럼, 실용성 제로의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선물하시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귀한 인생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에게 실용적인 사람이 되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과 하나님을 우리 인생에 실용적인 존재로 여기려 합니다. 그러나 먼저 예수님이 전혀 실용성이 없는 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실용적인 예수님을 부인하고, 실용성 제로의 예수님을 마음의 보물로 붙잡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에게 실용적인 사람이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쓰시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실용적인 예수님을 부인하고, 실용성 제로의 예수님을 마음껏 끌어안고 우는 것, 그것이 참 신앙으로 나아가는 단계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 ❓이순신 장군의 칼이 실용성이 없음에도 보물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 ❓'실용성 제로의 예수님'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 ❓예수님을 부인함으로써 오히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역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 ❓우리가 '하나님에게 실용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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