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부활 믿는 법 (막16:9-14)
설교 요약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단순히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사도신경의 '크레도'는 '나는 믿는다'는 뜻으로, 더 깊은 의미로는 '내 심장을 드린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 아버지께 내 마음을 드리는 것, 즉 마음을 담그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곡물에 발을 담갔을 때 느껴지는 시원함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담글 때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느낍니다. 풍랑 속에서도 주무시는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담근 자는 세상의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립니다. 반면, 건강이나 자녀 문제에 마음을 담그는 것은 그것을 믿는 것이며, 그 문제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 부활에 대한 믿음: 마음을 담그는 것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부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내 마음을 담그는 것입니다. 우리는 증언을 통해 부활의 소식을 듣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초자연적이거나 허구적인 사건으로 치부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마음을 담그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계곡물에 발을 담갔을 때 느껴지는 시원함처럼, 죽음을 넘어선 부활의 자리에서 오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즉, 죽음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고, 죽음 이전에 일어나는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부활 믿음의 증거: 죽음을 초월한 평안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죽음의 문제가 더 이상 두렵거나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베드로가 참수형을 앞두고도 편안히 잠들거나, 바울이 육체의 죽음을 주님과 함께 있는 소원으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죽음이 밥 한 끼 굶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문제로 취급되며, 죽음 이전에 일어나는 모든 세상사 또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집니다. 돈, 건강, 결혼, 취업 등 어떤 문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의 세계에서 오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완악함의 실체: 세상에 마음을 둔 상태
주님께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시며 '완악하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마음을 담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마음을 옮겨 담는 것인데, 제자들은 여전히 죽음 이전의 세상에 마음을 굳건히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는 죽음 이전의 세상일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며, 사랑 때문에 완악하다는 것입니다. 돈, 가정, 자녀 등 사랑하는 것이 너무 많아 죽음 너머로 마음을 옮기지 못하고 세상에 머물러 있는 상태가 바로 완악함입니다.
부활을 믿는 길: 십자가를 통한 세상과의 죽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방법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죽음 이전의 이 세상에 대해 주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무덤까지 마음을 쫓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세상에서의 예수님의 실용성을 기대하지 않았고, 이미 죽음을 넘어 주님과 함께 가고 있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통해 세상으로부터 마음의 발을 빼는 자기-주권의 죽음을 경험할 때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께 마음을 담글 수 있는 믿음이 생깁니다.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십자가를 통해 세상과 함께 죽을 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마음을 담그는 참된 믿음을 얻게 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믿음이란 단순히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 부활을 믿는 증거가 될 수 있나요?
- ❓제자들이 '완악하다'는 말을 들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 ❓십자가를 통해 세상과 함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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