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보면 삶이 거꾸로 된다 (마가복음 15:42~47)

📖 마가복음 15:42~47시즌II_신약마가복음-2

설교 요약

예수님의 죽음, '소마'가 말하는 특별함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 할 때 사용된 헬라어 '소마(σῶμα)'는 일반적인 '프토마(πτῶμα)'와 달리 살아있는 신체에도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생명 활동의 정지가 아닌, 인간 세상으로부터의 버림받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저주받은 세상의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자들로부터 버림받으셨습니다. 이는 곧 저주받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저주받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으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보통 상대방을 저주받은 사람으로 의식하며 관계 맺지 않지만, 이 오류는 인생을 망칠 정도로 중차대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저주에 찌든 상태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외치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바로 하나님이 마음에 계시지 않는 상태, 즉 저주받은 상태를 드러냅니다. 이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마음에 하나님을 모실 수 없어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버림, 저주받은 세상 바깥으로의 던져짐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지시고, 또한 인간들로부터 버림받으셨습니다. 저주받은 인간들이 저주받으신 예수님을 버린 것입니다. 저주받은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것은 저주가 없는 영역으로 던져졌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이 사건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게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내 마음을 묶어, 저주받은 세계 바깥으로 던져지신 예수님과 함께 저주받은 세계 바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예수님과 내 마음을 별개로 두고, 예수님은 저주 바깥으로 던져지실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주받은 세상 안쪽에 머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고백은 마음을 날마다 예수님의 죽음에 묶어 저주받은 세상 바깥으로 던져지신 예수님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것입니다.

천사의 시각으로 본 세상의 오류

오늘날 75억 인류는 저주받은 세계 속에서 저주에 찌든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주받음이란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상태로, 이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마음을 지배하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의 증상은 하나님 대신 이 세상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시각으로 볼 때, 하나님을 좋아하기에도 바쁜 존재가 돈을 좋아하는 것은 인면수심과 같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좋아할 만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천사들의 눈에는, 하나님 크기의 마음을 가지고 지음 받은 인간들이 하나님 대신 돈이나 건강을 좋아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 장로님의 예처럼, 저주에 찌든 마음에서 비롯된 소원, 생각, 감정, 의지는 모두 저주에 찌들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기쁘고 만족할 것이라는 기대감조차 저주에 찌든 감정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돈을 많이 벌었다 해도, 그것은 저주의 결과일 뿐 성공이나 승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저주의 기운이 융성해지고 확장되어 전성기를 이루게 된 것뿐입니다. 저주받은 세상에서 저주에 찌든 마음이 발원한 소원을 이루는 것은 저주의 극대화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세상에 대한 승리

성경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대해 승리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저주받은 세상에서 저주받은 마음을 가진 이들은 예수님을 좋아할 수 없기에, 예수님은 저주받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도 저주의 자리로 버림을 받으셨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저주받은 사람들과 같게 되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으셨다면 오히려 실패로 여기셨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거나 인기를 얻고자 하는 것은 저주받은 곳임을 염두에 둔다면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돈 역시 하나님의 뜻을 위한 재료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고, 임금 삼고자 하는 무리를 피하셨으며, 부활 후에는 세상이 아닌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축복으로 여기신 것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갖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받을 축복을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실패와 망함, 오히려 은혜

우리는 성공을 오해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이 더 심한 나병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우리는 저주에 찌들어 소원을 발동하고 생각, 감정, 의지를 갖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실제로는 저주를 더 크게 키우고 있습니다. 소원을 이루었다고 좋아하지만, 이는 완벽한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이고 저주의 전성기를 이루고자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대했던 결과로부터 수많은 배신과 실패를 경험해왔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저주받은 곳임을 잊고 살았습니다. 저주받았기에 그로부터 비롯된 생각, 감정, 의지 또한 저주에 찌들어 있었음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소원하고 추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실패했기에 잘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원하는 대로 성공했다면 저주의 전성기가 도래하여 저주의 기운이 우리를 완전히 장악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은 승리이기에, 주님을 믿는 우리의 실패와 망함과 좌절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저주의 기운을 억제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주 영주권자가 되지 않기 위한 삶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나사로가 천당에 가고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세상이 저주받은 곳임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저주받은 세상에서 생각, 감정, 의지가 저주의 장아찌가 되어 살고 있음을 이해할 때, 나사로의 상태는 저주받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은혜의 최고봉입니다. 저주의 기운이 가장 미약하게 억눌려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저주받은 마음에서 발동한 소원대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이는 저주의 전성기를 이룬 결과로 지옥에 가게 됩니다. 이 세상의 저주에 찌든 마음이 바라는 안정된 삶은 저주의 영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대단하게 여겨진다면 저주 영주권자가 되기 쉬운 자리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의 교인 수 증가, 예배당 신축, 예산 풍부함에 대한 소원 역시 저주에 찌든 마음에서 나오는 소원입니다. 그 소원대로 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저주의 기운을 억누르고 계시다는 증거이며, 이보다 더 감사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마음을 묶고 하나님 품에 안기기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내 마음에 묶어야 합니다. 저주받은 세상 바깥으로 던져지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마음 또한 저주받은 세상 바깥으로 던져져야 합니다. 그렇게 버려지신 예수님은 부활의 사건을 통해 다시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마음을 묶은 우리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님과 연합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셉이 죽으신 예수님의 신체를 받았듯이, 우리는 죽으신 예수님께 마음을 묶음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날마다 죽었음을 인정할 때, 날마다 저주받은 세상 바깥으로 던져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시고 품에 안으셨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은 세상에서 좋게 여겨지는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만족하는 삶입니다. 여러분에게 돈이 그러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돈은 바랄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주를 보면 삶은 거꾸로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마가복음 15장 42절부터 47절까지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저주를 보면 삶이 거꾸로 된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저주를 보면 삶이 거꾸로 된다’ 저주를 볼 수 없는 삶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저주를 볼 때 삶은 거꾸로 됩니다. 그리고 거꾸로 보는 삶은 옳습니다. 본문을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의 시체를 찾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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