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에 죄인에겐 죄가 최고다 (마9:1-13)
설교 요약
죄인 됨의 유익
어거스틴은 자신의 죄인 됨을 아는 것이 제2의 복음이라 했습니다. 죄는 영원한 멸망의 이유이자, 이 땅에서의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이 죄를 우리가 또렷이 느끼고 그 죄인 됨의 의식을 잃지 않을 때, 죄는 세상에서 내게 가장 유익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천국을 앞당겨 사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기왕에 죄인에겐 죄가 최고다'라는 말은 행위로 범죄하는 것이 최고라는 뜻이 아니라, 나의 죄인 됨을 자각하고 고백할 때 그것이 최고로 유익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병든 자의 의사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이를 책망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고 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의사는 예수님 자신을, 병든 자는 죄인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건강한 자는 죄인이지만 자신의 죄인 됨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상식적인 비유는 복음의 엄청난 능력과 은총의 범위를 전달합니다.
주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이유
치아 교정으로 유명한 치과의사의 아내가 정작 남편의 손길을 받지 못한 이유는 그녀의 치아가 완벽하게 건강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인격과 심령이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죄인 됨을 자각하지 못하기에 스스로 불행해지고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길이 닿으면 절망하거나 괴로워할 수 없습니다.
죄인에게 적합한 은총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죄인들에게 줄 하늘의 모든 것을 가지고 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33년의 삶과 3년의 공생애, 복음 사건의 의미는 모두 죄인에게 적합한 것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자각하지 못하면, 이 은총의 실질적인 효과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바로 이 죄인 됨의 자각이 없거나 약하다는 것입니다.
죄인 됨의 깊이와 은총의 크기
우리가 누리는 은총의 크기는 죄인 됨의 자각이 얼마나 깊은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왕에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하늘의 선물들은 모두 죄인에게만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내 죄 됨의 깊이를 볼수록 더 큰 은총이 쏟아집니다. 돈을 벌거나 비전을 가지려 애쓰기보다, 내 죄를 깊이 보는 것이 살 길입니다. 심장병처럼 죽을병에 걸린 것처럼 죄를 깊이 보면, 그만큼 엄청난 은총이 내려옵니다.
십자가의 죄인, 은총의 바다
독일 유학생이 폐병에 걸려 나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학위를 취득한 것처럼, 우리의 죄인 됨은 오히려 은총을 받는 통로가 됩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죽으신 모습이 바로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죽으신 것이며, 이를 삶에서 끊임없이 기억해야 합니다. 자식, 사업, 관계 등 무엇 앞에서든 '나는 주님이 죽으셔야 마땅한 죄인'임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은총의 바다에 떠내려가듯 살게 됩니다. 내 죄인 됨이 최고입니다.
죄를 크게 보는 경쟁
신앙의 경쟁은 누가 자신의 죄를 더 크게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을 극악무도하고 썩고 부패한 인간으로 얼마나 깊이 볼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렇게 죄인 됨을 고백할 때, 자식과의 관계에서 은총의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허튼 데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내 죄를 크게 보는 시합에 집중해야 합니다. 주님은 죄인 지향적인 은총을 가지고 오셨기에, 죄인이라는 의식이 없는 순간 은총도 무효화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죄인 됨을 자각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 ❓죄인 됨을 깊이 보는 것과 은총을 받는 것의 관계는 무엇인가요?
-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의미는 무엇인가요?
- ❓자신의 죄인 됨을 크게 보는 것이 신앙 경쟁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죄인 됨이 최고라는 말이 행위로 죄를 짓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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