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의 왕궁과 예수님의 빈들 (마14:6~12, 17~21)

📖 마14:6~12, 17~21시즌I_신약마태복음-1

설교 요약

옛것의 삶: 헤롯 왕궁의 퇴폐와 욕망

마태복음은 헤롯 왕궁의 퇴폐적인 모습과 예수님의 빈들에서의 사역을 나란히 배치하며 옛것의 삶과 새것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헤롯 왕궁은 마음이 육체에 묶여 모든 소원을 걸러짐 없이 이루려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헤롯 안티파스의 근친상간, 조카와의 결혼, 그리고 살로메의 유혹과 세례 요한의 비극적인 죽음은 이러한 제동장치가 파열된 욕망의 끝을 보여줍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살로메의 모습은, 소유하려는 끝없는 욕망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줍니다. 이러한 삶은 아무리 소박한 꿈이라 할지라도 결국 헤롯 왕궁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습니다.

옛것의 삶의 본질: 마음과 육체의 결합

옛것의 삶은 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이 결합되어 육체가 만나는 이 땅의 상황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헤롯 왕궁의 모습은 이러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소원과 욕망이 아무런 제동 없이 발현될 때의 결과입니다. 헤롯 왕이 자신의 조카이자 제수씨인 헤로디아를 탐하고, 살로메의 춤에 넘어가 세례 요한을 죽인 것은 마음의 욕망이 육체를 통해 즉각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삶은 자기 만족을 위한 끝없는 추구로 이어지며, 아무리 건전해 보이는 꿈이라 할지라도 이 구조에서 비롯된다면 결국 명예나 보람을 위한 자기중심적인 추구가 될 뿐입니다.

새것의 삶: 빈들의 긍휼과 하나님 의존

새것의 삶은 예수님께서 계신 빈들, 즉 광야와 같은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빈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최소한의 필요조차 채울 수 없는 곳입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무능함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긍휼이 와 닿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독사의 자식이라 불리며 긍휼이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마음과 육체가 결합된 상태에서 세상의 것을 끌어모으는 데 열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빈들에 처한 자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 위에서 살아갑니다. 이는 내 능력, 돈, 학벌, 인맥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빈들의 삶의 특징: 주어지는 대로 받고 하늘을 바라봄

빈들의 삶은 오직 주어지는 대로 받고 사는 삶입니다. 육체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고 활동하지만, 무엇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주시는 대로 받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줄 수 없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또한 빈들의 삶에는 하늘 왕궁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왕궁을 이루려 하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마음이 그곳에 가 있습니다. 즉, 세상은 빈들로 여기며 살지만, 마음은 이미 하나님 나라 왕궁에 거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빈들의 삶: 세상에 죽고 하나님으로 만족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 죽은 자가 되는, 즉 빈들에 처한 상태를 자처하게 하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십자가를 기억하며 세상에 대해 죽을 때, 예수님의 빈들이 펼쳐지고 그분의 긍휼이 우리에게 와 닿습니다. 이러한 빈들의 삶은 세상에 대해 이유 없는 기쁨과 평강, 행복과 감사를 누리게 하며, 무조건 하나님이 좋은 상태가 됩니다. 세상일이 가벼워지고 새것에 정통하게 되며, 하나님 때문에 만족하게 됩니다. 이는 삭막한 삶이 아니라, 오히려 참되게 기름지고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은 삶입니다.

오병이어의 심정: 하나님으로 배부른 자의 나눔

빈들의 삶에서 어린아이가 오병이어를 바친 것처럼, 하나님으로 온전히 배부른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너무 좋아서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혹시 여분의 것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만족하기 전에 사고 싶은 것을 사는 것은 헤롯 왕궁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천국을 느낀 뒤, 내 마음에 소원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어진 돈을 쓸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이는 빈들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쓰시는 삶입니다.

삶의 진단: 헤롯 왕궁인가, 예수님의 빈들인가

우리의 삶은 헤롯 왕궁과 같은 옛것의 삶으로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의 빈들과 같은 새것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진단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결합된 구조에서 나타나는 소원을 따라 사는 삶은 반드시 헤롯 왕가의 퇴폐적이고 추악한 상태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 세상에 대해 죽은 자로 자처하며 빈들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오병이어와 같이 빈약한 것으로 주어질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 하늘 왕궁에 거하며 하나님으로 만족하는가입니다.

본문 도입부

마태의 천재적인 영성이 돋보이는 본문입니다. 세례요한의 참수형을 통해 비추어지는 헤롯 왕궁내의 모습과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예수님의 빈들의 모습을 나란히 잇댐을 통해 옛것의 삶과 새것의 삶을 상징적으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신앙이란 헤롯 왕궁의 삶에서 예수 빈들의 삶으로 옮겨진 상태를 말합니다. 헤롯의 왕궁과 예수님의 빈들 (마14:6~12, 17~21)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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