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률과 청동률의 혼동 (마7:1~12)

📖 마7:1~12시즌I_신약마태복음-1

설교 요약

'그러므로'의 부재: 황금률의 왜곡

예수님의 황금률,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종종 공자나 랍비 힐렐의 유사한 가르침과 혼동되어 그 본질이 퇴색됩니다. 이러한 혼동은 말씀의 시작에 붙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를 간과함으로써 발생합니다. 이 '그러므로'는 앞선 구절들, 즉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권면과 하늘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약속에 근거합니다. 이 연결고리가 빠지면 황금률은 단순히 인간 윤리의 차원으로 강등되어 청동률에 불과하게 됩니다.

'나의 욕구' 기준의 위험성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때 심각한 오해가 발생합니다. 내가 받고 싶은 것이 반드시 상대방에게 유익이 되거나 기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자가 소에게 최고급 샐러드를 대접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는 상대방의 진정한 필요와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로 물든 인격이 원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며, 때로는 갈등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공자와 힐렐이 '원하지 않는 것을 베풀지 말라'는 소극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러한 기준의 모호함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의 진정한 의미: 하늘 아버지의 충만함

'그러므로'는 우리가 하늘 아버지로부터 충만함을 받았기에 이제는 다른 사람의 필요만을 바라보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기에, 더 이상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얻어 자신의 빈 곳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여전히 사람에게서 채움을 기대한다면,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받지 못했거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충족처이며, 그분으로부터 채워진 후에야 비로소 타인의 필요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의 재해석: 십자가와 천국

하늘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말씀은 우리의 불안함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여기시며 판단하시는 '좋은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은 십자가로 귀결되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이며, 십자가를 받아들인 자들에게 나타나는 천국의 모습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은 돈이나 건강 같은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우리 마음에 부어지는 천국입니다. 이 천국은 세상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만족하게 하며, 세상을 이기는 행복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새로운 관점: 직장에서의 '돈 안 벌고 살기 클럽'

우리가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것은 사장님이나 회사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서 사장이라는 통로를 통해 주시는 것입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 재산 역시 궁극적으로는 하늘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직장으로 보냄을 받은 것이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얻어 채우려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배반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데,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만족시킬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분별과 천국: 개와 돼지, 그리고 바리새인

'개에게 거룩한 것을 주지 말고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는 말씀은 이 땅의 것으로 만족하려는 체질이 된 자들에게는 천국을 전해도 소용없다는 의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세상적인 기준에서 성공했다고 여기며 부귀와 명예를 굳건히 붙잡고 있었기에 '들보'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반면 세리와 창기들은 세상에서 붙잡을 것이 없었기에 '티'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 말씀을 하셨는데, 이는 그들이 세상적인 것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진정한 분별은 천국을 소유했는지 여부에 있으며,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을 천국으로 이끌고자 하는 것입니다.

황금률의 완성: 타인의 필요에 집중하라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 마음에 천국으로 만족을 주셨다면,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가 아니라,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아내, 남편, 자녀에게서 채워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 하늘 아버지의 충만함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창조주가 아버지이신데, 세상 사람이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황금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러므로'라는 단어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타인의 필요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본문 도입부

신앙인과 불신앙인을 불문하고 전 인류에 회자되는 황금률을 모르는 분은 없습니다. 그리고 공자나 유대의 랍비 힐렐등의 유사 황금률들도 같이 붙어 다니며 명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치명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황금률을 청동률쯤으로 강등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겁니다. 황금률과 청동률의 혼동 (마7:1-12)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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