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사회적 죄인들의 깜짝 대박 (마태복음 9:9~13)
설교 요약
과녁과 죄인, 의인의 의미
본문에서 죄인은 '과녁에서 빗나간 사람'을 의미하는 헬라어 '하마르톨로스'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어떤 기준이나 목표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의인은 '과녁을 맞힌 사람'이며 '기준 안에 머무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녁은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삶의 다양한 목표, 예를 들어 대학 합격, 취업, 연애 등에서도 발견됩니다. 과녁 적중은 기쁨과 만족을, 빗나감은 허무함과 슬픔을 가져옵니다.
세 가지 과녁: 영적, 법적, 사회적
우리가 이해해야 할 과녁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영적인 과녁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죄로 봅니다. 둘째, 법적인 과녁은 실정법을 기준으로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셋째, 사회적인 과녁은 인간 세상이 정한 가치, 즉 돈, 외모, 학력, 집안 등에 따라 의인과 죄인을 구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회적 기준에 영향을 받으며, 돈이 있는 자는 의인, 없는 자는 죄인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 사회적 죄인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회적 과녁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영적인 과녁으로 본다면 모두가 죄인이기에 굳이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강조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기준에 따라 세리나 이방인들을 죄인으로 여기며 멀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기준을 역이용하여, 사회적으로 죄인 취급받는 이들을 부르러 오셨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사회적 의인의 딜레마
사회적 과녁, 예를 들어 돈이나 권력 등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이미 큰 기쁨과 만족을 얻었기에,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과녁에 마음을 돌리기 어렵습니다. 마치 부자 청년이 재산을 포기하지 못해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들은 이미 사회적 과녁에 마음을 적중시켜 **'십년짜리 변비'**와 같은 상태에 빠져, 영적인 과녁으로 마음을 돌리기 힘든 것입니다.
사회적 죄인의 '깜짝 대박'
반면, 사회적 과녁에서 벗어나 실패자, 낙오자로 여겨지는 사회적 죄인들은 마음의 자유로움을 얻게 됩니다. 이들은 기쁨과 만족에 굶주려 있기에 예수님의 부름에 쉽게 응답할 수 있습니다. 나사로의 비유처럼, 사회적으로는 비천했으나 하나님을 의지했던 이들이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기에, 이들에게는 **'깜짝 대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 사회적 과녁을 배설물로 여기기
우리가 십자가 생활화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 사회가 정해놓은 가치의 과녁들을 배설물로 여기기 위함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사회적 죄인으로 만들어, 인간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사회적 과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한 하나님을 과녁 삼을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 모든 것을 잃고 예수님께 마음을 드릴 때, 하나님께 적중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며, 이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통쾌함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본문에서 말하는 '죄인'과 '의인'은 어떤 기준으로 구분되나요?
- ❓예수님께서 '사회적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 ❓'십자가 생활화'는 사회적 죄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 ❓사회적 죄인으로서 '깜짝 대박'을 경험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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