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시인하는 즐거움 (마태복음 10:24~33)
설교 요약
우리가 흔히 '시인하다'라고 할 때, 예수님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헬라어 '호모로게오'는 '같은 말을 하다', '한 마음이 되다'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이는 예수님과 조금도 갈등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연합된 상태를 의미하며, 이러한 마음의 연합이 사람들 앞에서 드러날 때 진정한 '시인'이 됩니다. 귀신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았지만 연합되지 못했듯, 지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 안에 들어가 연합되었을 때, 그 증거가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 시인의 증거: 천국에 간 마음의 티
예수님을 시인하는 삶은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과 아무 갈등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예수님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드러납니다. 이는 마치 금슬 좋은 부부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감으로 인해 '천국에 간 티'가 나야 합니다. 배우자 앞에서 인상을 쓰거나 온유함, 참음이 없다면 지옥과 연결된 마음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예수님 안에 있다면, 남루한 행색이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가 있는 듯한 즐거움이 나타납니다.
대화의 즐거움과 문제 해결의 열쇠
예수님을 시인하는 삶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 배우자, 자녀, 돈 등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예수님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세상의 문제들을 등지고 하나님의 명령권 안으로 들어갈 때 가능해집니다. 회의석상에서조차 마음이 예수님 안에 있다면, 문제에 대한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집니다. 세상의 어떤 문제도 하나님과 예수님이 모르시는 것이 없기에, 그 답을 주시는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가장 즐거운 일입니다.
세상의 위협과 복음의 능력
예수님을 시인할 때 박해가 생기는 이유는, 예수님을 시인하는 사람이 문제의 답을 알고 즐거워하는 반면, 마음을 세상에 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 전체가 부인당하는 듯한 위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돈, 건강, 자녀의 형통 등 세상의 가치를 자랑으로 삼았던 삶이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 앞에서는 무가치해 보입니다. 이러한 세속적 우월함이 아닌, 예수님 안에서의 기쁨과 만족을 드러낼 때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헛되었음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는 복음의 강력한 능력이며, 타락이 아닌 영생의 기회로 이어집니다.
실패 속에서도 빛나는 시인의 용기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세상의 가치를 배설물로 여기는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세상의 가치를 중시하는 세상은 예수님의 가치를 시인하는 사람들에게 위협감을 느끼고 탄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잃더라도 잃을 가치가 없는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집착이 없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하늘이 열린 것처럼, 마음이 천국에 올라간 티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시인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영생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제 해결의 비결을 제시하며, 후일을 기도하며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의미하나요?
- ❓마음이 예수님과 연합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 ❓세상 사람들에게 위협감을 주는 것이 전도에 도움이 되나요?
- ❓예수님을 시인할 때 박해가 온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 ❓가장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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