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편들기가 성령훼방 죄 (마태복음 12:22~37)

📖 마태복음 12:22~37시즌II_신약마태복음-2

설교 요약

귀신의 가장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사역은 인간의 마음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즉 마음에서 가장 가까이 계신 곳에 계십니다. 원죄로 인해 하나님을 지나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이어지는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귀신의 역사는 이러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 성령의 본질적 사역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눈앞의 배우자나 만질 수 있는 몸보다 마음에서 하나님을 먼저 보고 크게 느낄 때 성령이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대상을 보고 싶어 할 때, 하나님을 보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거역하고 훼방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훼방 죄입니다.

성령훼방 죄: 마음의 하나님을 거역함

마음에 돈, 자녀 형통, 정치적 성공 등 세상 가치의 이름을 담으면 그것을 실제로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귀신이 역사하는 동안에는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를지언정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원하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마음에서 하나님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느끼게 됩니다. 귀신들림은 인격적인 사건이기에 겉으로 보이는 증세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마음에서 하나님 대신 세상 대상의 이름을 담게 되는 것으로써 귀신의 사역에 동조하고 가담하게 됩니다. 본문 31절은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라고 말씀하며, 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임을 명확히 합니다.

바리새인의 오류: 안식의 본질을 놓침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시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는 성령님의 사역 결과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한 것이라고 비난한 것으로, 근본적으로 성령님의 사역을 훼방한 것입니다. 마태는 이 사건을 안식일 논쟁과 연결시키며,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규정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정작 마음에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듣지 못했기에 안식의 본질을 놓쳤음을 지적합니다. 그들에게 안식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귀신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과 다름없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의 부재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정을 지킨다는 행동만 했지,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듣지 못하게 하려는 귀신의 사역에 동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면, 하나님을 볼 수는 없어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돈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처럼, 하나님을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귀신들려 살아가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그리워할 줄 몰랐습니다. 귀신은 생각, 느낌, 말 속에 인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망상과 오류: 하나님을 지나친 시선

풍랑 만난 배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가장 가깝고 크게 보고 계셨기에 깊이 잠드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지나쳐 몸으로 만나는 풍랑이라는 상황에 마음을 향했기에 풍랑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는 망상이고 착각이며 오류입니다. 풍랑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보지 못하면, 우리 또한 돈 문제, 배우자 문제 등에서 망상과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깝고 큰 분으로 볼 때에만 진실을 대면할 수 있습니다.

성령훼방 죄: 세상의 비전과 꿈을 경계하라

귀신은 안식과 반대되는 일을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규정을 가장 잘 지키면서도 안식과 가장 먼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착각, 망상, 오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깝고 가장 큰 분으로 볼 수 없는 상태는 근본적으로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볼 수 없는 정치인의 말과 행동 또한 망상과 오류일 뿐입니다. 성령의 사역을 근본적으로 무효화시키고 하나님 대신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세상의 비전과 꿈이 성령의 사역을 무효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생활화: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

재정, 건강, 자녀 문제 등으로 철야기도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용서받지 못할 성령훼방 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것이 신앙의 기초입니다. 마음에 돈을 담으면 돈을 그리워하듯, 하나님을 마음에 담고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할 때 성령이 역사하며, 이때 십자가 생활화의 필요성이 생깁니다. 십자가 생활화는 "하나님이 그립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는 세상 문제만 보입니다. 내 마음에서 하나님을 가장 가깝고 가장 큰 분으로 보게 해주세요!"라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지만, 이 사역을 무효화시키며 하나님을 전혀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죄의 짐을 벗지 못할 것입니다. 십자가 생활화는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본문 도입부

마태복음 12장 22절부터 37절까지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귀신 편들기가 성령훼방 죄>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귀신 편들기가 성령훼방 죄’ 오늘 말씀에는 다룰 수 있는 여러 주제가 복합적으로 들어있습니다. 그 중에서 성령훼방 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보고자 합니다. 세상에 귀신을 편들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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