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결심대신 감사 먼저 (마태복음14:22~36)
설교 요약
세상의 소원은 사탄의 가르침
새해를 맞이하며 희망찬 결심이나 소원을 품는 것은 사탄의 영향력 아래 있음을 증거합니다. 세상적인 기준에 따른 감사는 마음의 기준에 부합할 때 나타나며, 이는 사탄이 가르쳐 준 감사입니다. 좋고 나쁨의 판단 기준은 사탄의 영향력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뿌리내린 감사
하나님의 주권에 뿌리내린 감사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빈틈없이 우리 삶에 내려오며, 그 속성은 독생자를 희생시킬 정도의 사랑과 전지전능하심입니다. 이를 인정할 때, 세상적인 기준에서 좋든 나쁘든 모든 일은 하나님의 사랑과 전지전능하심으로 인한 최고이자 최선의 결과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 부합하는 절대 감사입니다.
태초의 바다와 하나님의 명령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말씀처럼, 세상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성분으로 하는 바다 위에 떠 있습니다. 바람 같으신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며 명령하심으로 모든 피조물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이 하나님의 주권과 명령을 인격적으로 수용해야만 가라앉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소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거스름
베드로가 풍랑을 보고 두려워 바다에 빠진 것처럼, 세상에 대한 희망과 소원을 품는 것은 세상이라는 바다에 빠지는 이유가 됩니다. 이는 바람 같으신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 즉 하나님의 주권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희망차다'는 말은 실상 세상에 빠져 숨이 차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주권자가 되려 할 때 하나님의 주권은 빠져나가고 삶은 가라앉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는 길: 예수님 바라보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살아서 움직이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주권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쉬지 않고 바라봄으로써 세상에 대한 나의 주권은 죽게 되고, 이는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봄은 세상에 대한 죽음이며, 이는 곧 무슨 일이든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하늘을 향한 소원
감사 없이 세상에 대한 나의 주권의 죽음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도저히 감사가 나오지 않는 부분은 그 부분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봄을 통해 나의 주권이 죽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일 때 감사는 나오게 됩니다. 우리의 소원은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해야 하며, 하늘을 향한 그리움과 희망이 임계점에 도달할 때 천국을 체감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새해에 희망찬 결심을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나요?
- ❓하나님의 주권에 뿌리내린 감사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 ❓성경에서 말하는 '태초의 바다'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 ❓세상에 대한 소원이 하나님의 주권에 거스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어떻게 나의 주권을 죽게 만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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