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재림 불감증의 이유 (마태복음24:32~41)

📖 마태복음24:32~41시즌II_신약마태복음-2

설교 요약

인생의 정점, 예수님의 재림

우리의 인생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비로소 그 가치가 결정됩니다. 대통령이나 회장, 총장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혹은 노숙자나 수감자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재림 앞에서 인생의 평가는 달라집니다. 인생의 최대 사건은 예수님의 재림이며, 이를 실감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하루하루를 최고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재림을 체감하는 삶은 구속감이나 억압감 없이 온전한 자유로 충만하며, 말과 행동이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재림 예표를 보는 눈

예수님의 재림을 체감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재림을 예표하는 일들을 보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처럼,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는 것을 보고 여름이 가까움을 알듯,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예표하는 일들을 통해 그 임박함을 느껴야 합니다. 많은 이단들이 재림을 이용해 구원의 티켓을 팔아먹지만, 진정한 재림은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자유를 선사합니다. 이 자유의 기운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재림을 체감하는 사람들입니다.

'큰 환난'의 참된 의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큰 환난'을 역사 속 특별한 사건이나 미래의 재난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큰 환난은 단순히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흑사병, 핵폭탄, 전쟁, 테러 등 인류 역사 속에서 겪었던 수많은 재난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재건되고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짜 큰 환난은 바로 마음이 텅 비었음을 발견하고, 더 이상 채울 대상을 희망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에 찾아오는, 생존 본능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마음의 공허함입니다.

마음의 지성소와 멸망의 가증한 것

우리의 마음은 본래 하나님을 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의 지성소에 기쁨과 만족을 줄 것이라 믿는 세상의 가치들(명예, 인기, 재산 등)을 담습니다. 이것이 바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역겨워하시는 이 상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로 두려운 환난을 가져옵니다. 마릴린 먼로나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세상의 가치를 얻고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음을 깨달을 때, 그들은 견딜 수 없는 두려움과 마주하고 육체를 죽여서라도 도망하고자 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와 재림 체감

이러한 '큰 환난'을 바로 보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십자가 생활화를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를 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재림을 인생 최고의 사건으로 알고 기다릴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체감하는 삶입니다. 재림을 체감할 때, 물과 기름이 분리되듯 이 세상의 모든 가치들로부터 마음은 자유로워집니다. 자기 속의 공허함을 직면하는 것보다 더 큰 환난은 없습니다. 이 큰 환난을 보는 자들만이 예수님의 재림을 인생 최고의 사건으로 체감하고, 매 순간 예수님의 재림이 주는 최고의 기운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마태복음 24장 32절부터 41절까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재림 불감증의 이유>라는 제목의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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