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삶과 지옥 삶의 경계 (민21:10-35)

📖 민21:10-35시즌I_구약민수기-1

설교 요약

십자가, 삶의 질적 경계

이 땅에서의 삶은 공간이나 직장의 변화가 아닌, 영적이고 질적인 경계에 의해 천국적 삶과 지옥적 삶으로 나뉩니다.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천국과 같은 삶을 살 수도, 지옥과 같은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이 경계는 바로 십자가 복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적용에 달려 있습니다.

놋뱀 사건: 죄악의 실체 직시

민수기 21장의 놋뱀 사건은 우리가 사탄의 뱀에게 물려 독이 퍼진 상태, 즉 죄악에 완전히 점령당한 존재임을 인정하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욕망은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결과이며, 이는 우리 마음의 상태, 세계관, 가치관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놋뱀을 바라보는 것은 내가 비정상적인 상태임을 깨닫는 시작입니다.

므리바 vs. 브엘: 불평에서 순종으로

므리바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물이 없다고 불평하며 하나님과 다투었고, 이는 모세의 가나안 땅 진입 금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놋뱀 사건 이후 브엘에서는 하나님께서 먼저 백성을 모아 물을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이 차이는 생리적 필요조차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상태, 즉 자신의 필요를 하나님 앞에서 점검하고 불평 대신 순종하는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느끼는 필요는 죄악에 물든 상태에서 솟아나는 것일 수 있기에, 그 필요 자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합니다.

담판과 싸움: 나의 계획 vs. 하나님의 주권

에돔과의 담판과 아모리 왕 시혼과의 담판, 그리고 아랏 왕과 바산 왕 옥과의 싸움은 놋뱀 사건을 경계로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놋뱀 사건 이전에는 자신의 길을 고집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서원하며 간구하는 인간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놋뱀 사건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나서서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라고 말씀하시며 앞서 행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내 죄악 된 생각과 필요를 죽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인도하신다는 천국 삶의 특징입니다.

십자가, 천국과 지옥의 경계

결국 천국 삶과 지옥 삶의 경계는 주님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내가 앞서가며 계획하고 주장하는 삶은 지옥의 짐을 지는 것이지만,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 죄악 된 본성을 죽이고 하나님만을 만족케 하며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며 ‘주리라, 주리라’ 하시는 천국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갈 때 슬픈 마음이 위로받는 것은 바로 이 신비로운 하나님의 역사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경계에요. 지옥의 삶을 다시 말해서 내가 하고 내가 느끼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앞서가며 할 것이냐, 하나님이 앞서가시면서 주리라 주리라 주리라 하시는 것을 따라가면서 양이 되어서 천국의 삶을 살아가느냐 그 경계선이 주님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천국 삶과 지옥 삶의 경계 민수기 21장 10절부터 35절까지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21장 말씀 중심으로 해서 <천국 삶과 지옥 삶의 경계>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천국 삶과 지옥 삶.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을 말합니다. 거기에 경계가 있습니다. 분명한 경계가 있어요. 우리가 삶의 장소를 바꾸는 것도 아니고 직장이 지옥과 같은 직장에서 천국과 같은 직장으로 바뀐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천국적 삶이 있고 지옥적 삶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경계는 공간적 경계나 시간적 경계가 아니라 영적인 경계요, 질적인 경계가 있다는 것이에요. 똑같은 남편과 아내와 함께 삽니다. 근데 지옥을 살기도 하고 천국을 살기도 합니다. 똑같은 자식들입니다. 그 자식들과 함께 사는데 그런데 천국의 삶이 있을 수 있고 지옥의 삶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분당이라고 하는 곳을 우리가 농담 삼아서 천당 아래다 이렇게 얘기하고 또 제가 밴쿠버에서 살 때 밴쿠버를 구백 구십 구당이라고 그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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