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로틴 "국가의 면도칼" (민35:1-34)

📖 민35:1-34시즌I_구약민수기-1

설교 요약

도피성의 기원과 의미

오늘 본문은 민수기 35장의 '도피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 레위인들이 살아갈 성읍 48개 중 6개를 도피성으로 지정합니다. 도피성은 의도치 않게 사람을 죽인 자들이 원한을 가진 자들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마련된 피난처입니다. 이는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도피성의 주목적은 단순히 피하는 것을 넘어, 속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도피성에 거하는 자는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머물러야 했는데, 이는 장차 오실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예표합니다.

'나'라는 이름의 길로틴

프랑스 대혁명 당시 사용되었던 '길로틴'은 죄수를 고통 없이 처형하기 위해 고안된 단두대입니다. 이 형틀의 이름은 이를 제안한 조셉 길로틴의 이름에서 유래했지만, 이후 '국가의 면도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설교는 이 길로틴에 빗대어, 우리가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가족의 면도칼', '자녀의 면도칼'이 되어 다른 이들의 생명줄을 끊어내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모든 대상에 대해 하나님께서도 계획과 뜻을 갖고 계시는데, 우리의 뜻과 계획을 주입하며 하나님의 뜻을 잘라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라내는 '나의 뜻'

우리가 자녀를 교육하거나 사업을 계획할 때, 종종 우리의 뜻과 소원을 먼저 내세웁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대상에게 갖고 계신 계획과 뜻, 즉 '생명줄'을 끊어내는 행위와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의 계획과 소원이 끊어진 것처럼, 우리의 뜻을 관철하려는 시도는 곧 자기 생명줄을 스스로 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보존되어야 생명이 보존된 인간이 될 수 있는데, 우리는 본의 아니게 제2, 제3의 길로틴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잘라내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통하지 않는 상태

죄란 하나님과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는 로마서의 말씀처럼,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나 사업에 대해 갖는 소원, 간섭하는 모든 것은 죄입니다. 이는 길로틴처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잘라내버리는 살인 행위입니다. 따라서 도피성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어떤 일에도 손댈 수 없는 상태, 즉 자기-주권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한 해방

도피성에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속죄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고, 내 뜻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자녀, 가족, 사업 등 삶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거치지 않고 나아가는 모든 행위는 상대방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뜻을 죽이는 행위이며, 결국 불행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뒤로 도피하여 완전히 죽은 자가 된 후에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진정한 생명줄은 하나님의 뜻

우리가 관심을 갖는 모든 것, 즉 사업, 일, 단체 등은 그것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나름대로의 뜻과 소원을 관철하려는 것은 곧 그 하나님의 뜻의 어느 부분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길로틴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고 내 뜻이 죽은 후에야, 우리는 자녀와 남편, 아내, 사업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보존시키기 위해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연합하고 죽을 때, 비로소 이 세상에 대한 관심이 죽고 하나님과 통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삶의 재개

우리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고, 내 뜻이 죽은 증거는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진다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바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가든 말든, 사업이 흥하든 망하든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소원이 생길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보존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거치지 않은 우리는 모두 제2, 제3의 단두대, 즉 길로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매일 주님의 뒤로 도피하고, 주님의 죽음을 통과하여 다시 삶의 자리로 나오는 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길로틴 “국가의 면도칼” (민35:1-34)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길로틴, 국가의 면도칼>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길로틴(guillotine), 여러분 다 아시지요? 단두대라고 우리가 한국말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죄수를 사형시키는 하나의 형틀입니다. 목을 걸고 그리고 위에서 아주 묵직한 칼날이 내려오면서 사람의 목을 끊어내는 그런 참담한 형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 길로틴이라는 말이 단두대를 만든 사람의 이름입니다. 조셉 길로틴. 길로틴이라는 말을 불어로 발음하면 기요뗑이라고 하나 봐요. 전 불어를 잘 모릅니다. 근데 이 조셉 길로틴이라고 하는 사람이 사람이 사형을 받을 사람이라도 좀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을 죽음의 권리가 있지 않느냐. 그것을 헌법 의회에 주창을 하게 되면서 한 외과의사가 고안해낸 이 사형 집행장비를 선을 보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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