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할 만큼 호사로운 섬김 받기 (민17:1~13)
설교 요약
예수님의 섬김, 당연한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크루즈 여행에서 최고급 서비스를 받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신다는 사실은 어색할 만큼 호사로운 섬김입니다. 이 섬김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정중히 사양해야 할까요? 이 섬김은 우리의 삶의 기반과 토대가 됩니다.
예수님의 섬김, 자력갱생의 필요성을 상실케 하다
예수님의 섬김을 삶의 토대로 삼을 때, 우리는 자력갱생의 부분이 불필요해짐을 경험합니다. 마치 승무원의 도움으로 음식을 직접 가지러 갈 필요가 없어지는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라는 토대 위에서 삶을 출발하기에 스스로 삶의 어려움을 타파하고 환경을 개선해나가는 과정이 필요 없어집니다. 만약 여전히 내가 애를 써야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잘되기 위해 예수님을 찾는다면, 이는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론의 지팡이 사건: 선택받은 자들의 지위
민수기 17장의 아론의 지팡이 사건은 단순히 제사장의 권위를 확립하는 것을 넘어, 제사장으로 택함 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위를 명확히 합니다. 각 지파의 지팡이 중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싹이 난 것은, 근원적인 선택함 안에서 선택하신 결과입니다. 다른 지팡이들이 선택받지 못한 것처럼 보여도, 그들 역시 근원적인 선택 안에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기쁨의 이유로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된 자들이 선민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는 길: 성막과 제사
하나님을 선택하여 소유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는 성막의 장치를 통해 가능합니다. 번제, 화목제, 속죄제 등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며,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대제사장으로 아론이 택함 받았습니다. 아론의 지팡이를 선택하신 이유는 근원적으로 선택하신 다른 11지파의 사람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아론의 섬김을 통해 관장되는 성막과 제사를 삶의 기반으로 삼아야 하며,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더욱 온전히 완성되었습니다.
십자가의 토대 위에서 출발하라
재벌 자녀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토대로 출발하듯, 우리는 창조주 여호와를 아버지로 모시는 토대 위에서 삶을 출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우리의 삶의 토대가 됩니다. 아론에게 반란을 일으킨 고라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이루어진 삶의 토대를 스스로 허무는 것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부터 이어지는 하늘나라는 먼 훗날 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출발점이자 기반입니다.
하늘나라를 토대로 만끽하는 거룩함
하늘나라를 토대로 삼는 것은 호사스러움입니다. 이 거룩한 천국과 아버지 되심을 삶의 토대로 삼을 때, 세상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고 하나님께만 몰입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어지기에,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모든 일이 다른 사람을 위한 섬김이 됩니다. 극상의 호사스러움의 섬김을 받은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이 토대를 잃지 않도록 하늘 아버지의 천국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예수님의 섬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왜 '호사스러움'으로 표현되는가?
- ❓자력갱생의 필요성이 상실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 ❓아론의 지팡이 사건이 제사장 권위 확립보다 이스라엘 백성의 지위 규정에 더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무엇인가?
- ❓십자가의 토대가 우리의 삶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 ❓하늘나라를 삶의 기반으로 삼을 때, 세상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는 과정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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