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앙적 삶의 이중플레이 (민21:10~35)
설교 요약
선민의 삶, 이중플레이의 본질
참 신앙적 삶은 종종 '이중플레이'로 비춰집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선민의 마음의 움직임과 하나님의 역사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대남 정책처럼 한 사람이 상반된 말을 하는 것과는 달리, 선민의 이중플레이는 마음은 한 방향을 향하지만, 그 결과와 하나님의 역사가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에 선민의 삶이 이중플레이로 보이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과 번제의 정신
놋뱀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한 것은 '내가 뱀의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뱀처럼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의 배를 이 땅에 붙이고 살았던 삶을 뉘우치는 것으로, 번제의 정신입니다. 양이 죽는 것을 보며 내가 죽는다고 믿는 것은, 사탄의 유혹에 중독되어 이 땅에 마음을 붙이고 수평 운동을 하던 삶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물 사건: 하나님의 솔선과 노래
광야 생활 중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 없이 물을 얻은 사건이 우물 사건입니다. 이전에는 항상 원망과 불평 후에 징계와 함께 물을 주셨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솔선하셔서 물을 주십니다. 이는 십자가 사건의 생활화, 즉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번제의 정신을 체득한 결과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니 물 같은 세상 것에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채워주시는 기쁨과 충만함이 있습니다.
평화 선언과 하나님의 도발
아모리와의 전쟁에서 모세는 먼저 평화적인 교섭을 시도합니다. 이는 '너희들이 아모리를 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아모리를 진멸하라는 명령과 상반되는 듯 보이지만, 이는 가나안 복지에 대한 열망을 마음에서 빼내라는 의미입니다. 가나안을 마음에 품으면 아모리는 적이 되지만, 마음에서 가나안을 빼내면 하나님을 모셔 들이게 되고, 하늘나라가 기업이 된 이에게는 이 땅에 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중플레이의 실체: 마음의 방향
참 신앙인은 승진이나 세상적인 욕망에 마음을 둘 여유가 없습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기에 세상 사람들은 이를 이중플레이로 봅니다. 마치 요셉이 감옥에서 총리가 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여기시면 승진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이 땅에 붙어 있다면 가는 곳마다 적이 생기고, 결국 하나님까지 적으로 삼게 됩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안에 예수님을 목숨처럼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 신앙인의 삶의 결과
우리의 신앙적 삶은 내가 이중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이루고 싶어 하시는 삶을 마음에 담고 계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담고 계신 것에 반하는 모든 사람과 상황이 적이 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얻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에는 아무것도 얻고 싶어 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제 생활에서 많은 것을 얻는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이 바로 참 신앙적 삶의 이중플레이입니다. 이러한 삶이 내게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그렇지 않다면 십자가 생활화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참 신앙인의 삶이 왜 세상 사람들에게 이중플레이로 보이는가?
- ❓번제의 정신은 십자가 복음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 ❓하나님께서 솔선하여 물을 주시는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아모리와의 전쟁에서 평화 선언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 ❓마음이 이 땅에 붙어 있을 때 발생하는 신앙적 문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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