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접촉점, 마귀도 찾고 있다 (민25:1~18)

📖 민25:1~18시즌II_구약민수기-2

설교 요약

접촉점 모색의 현실과 문제점

현대 교회는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접촉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문화적 이질감이나 거부감을 줄이고 공통의 관심사를 통해 소통의 다리를 놓으려는 합리적인 시도이다. '맞춤형 전도'라는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접촉점 모색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사탄 마귀 역시 기독교 진리에 침투하기 위해 우리와 똑같이 접촉점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는 접촉점은 사탄이 세상으로부터 교회로 침투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불신자의 마음은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 가득 차 있기에, 공통점을 기반으로 한 접촉점은 오히려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강도를 높일 수 있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교회의 사례는 이러한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바알브올 사건과 마귀의 궤계

이스라엘 백성이 싯딤에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고 그들의 신에게 제사하는 바알브올 숭배에 가담한 사건은 이러한 문제의 대표적인 예다. 이는 발람의 간교한 궤계에 따른 것으로,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 안에 있는 세상적인 풍요와 다산에 대한 열망을 접촉점으로 삼았다. 바알 신 역시 풍요와 다산을 상징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바알 숭배와 겹쳐지는 지점을 발견하고 쉽게 타락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혼합을 넘어, 궁극적인 가치가 인격적인 하나님 자체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추상적인 가치나 세상적인 성공을 추구하게 되는 종교 다원화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세상의 가치와 교회의 혼합

바알 숭배 사건은 오늘날 교회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교회 안에서 장로 선거 등에 돈이 뿌려지고 떡이 돌려지는 모습은 세상의 선거와 다르지 않다. 이는 교회가 세상의 가치관과 뒤섞여 또 하나의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보여준다. 풍요와 다산이라는 공통된 목적이 하나님과 바알을 겹쳐 보이게 하듯,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마음은 기독교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말하는 이들조차 바알 숭배와 같은 대상을 향해 단지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일 수 있다.

진정한 전도의 접촉점: 나 자신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도의 접촉점은 세상 사람들과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귀가 기다리는 접촉점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늘나라를 전도하시기 위함이었으며, 그분은 불신자와의 접촉점에서 불신자와 하나님이 어떻게 접촉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셨다. 즉, 예수님 자신의 삶이 불신자와 하나님 사이의 접촉점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불신자를 만날 때 나 자신이 하나님과 그가 접촉할 수 있는 접촉점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선교이자 전도이다.

십자가 생활화: 나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

나 자신이 접촉점이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생활화해야 한다. 세상의 희망과 꿈을 향해 있던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하여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 마음이 하나님께 도달하면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내려와 우리의 인격을 장갑처럼 끼게 된다. 하나님께서 장갑으로 끼신 우리를 통해 불신자를 어루만져 주실 때, 비로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통한 선교가 이루어진다. 사도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함이었지만, 이는 그의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세상의 흉내를 내는 접촉점 모색은 교회를 세상에 말려들게 할 뿐이다. 전혀 어색한 분위기에서도 십자가를 고집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기회가 제공된다.

결론: 영적 분별력과 십자가의 능력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십자가를 굳게 붙잡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세상의 심리학이나 커뮤니케이션학에 기초한 접촉점 모색은 교회를 세상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 뿐이다. 진정한 접촉점은 십자가 자체이며, 이를 생활화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다.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가장 어색한 곳에서도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자들이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실 것이다.

본문 도입부

요즈음 교회의 전도나 선교의 추세가 소위 '접촉점'에 집중 되는 듯 합니다. 전혀 이질적인 종교나 문화권에 있는 불신자들이 가능한 거부감이나 어색함 없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전도의 접촉점을 사탄 마귀도 똑같이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세상으로의 접촉점은 세상에서 교회로의 접촉점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 접촉점은 영영 없는 것일까요? 아니요. 있습니다. 전도 접촉점, 마귀도 찾고 있다(민25:1~18) 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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