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돼지 믿음 (벧후 2:1~22)

📖 벧후 2:1~22시즌II_신약베드로전후서-2

설교 요약

거짓 선생과 거짓 교인의 본질

교회 안에 준동하는 거짓 선생과 그들을 따르는 거짓 교인의 영적 본질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운 돼지'와 같다. 사도 베드로는 이들을 '멸망하게 할 이단'을 끌어들이고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자들'로 규정하며,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한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로 이득을 삼으며, 그 심판은 지체하지 않고 임한다.

믿음의 파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했던 자들이 다시 그 중에 얽매이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해진다. 이는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낫다는 참된 속담처럼, 믿음의 파선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거짓 선생들은 하늘의 은사와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하여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는 자들이다. 이들의 문제는 십자가 예수님을 의식 속에 켜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앎'의 본질: 그리스도 연쇄 과정의 켜놓음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식 속에 **에피그노시스(ἐπίγνωσις)**로 켜놓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은 의식 속에 켜놓은 대상을 향하게 되므로, 예수님의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의식 속에 켜놓으면 마음은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는 흐름을 유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하는 길이다.

마음이 세상을 향할 때, 개돼지 믿음이 된다

의식 속에 예수님의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켜놓는 일이 중단되면, 마음은 더 이상 하늘로 향하지 못하고 세상의 것들을 향해 흐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더러운 구덩이에 누웠다'는 속담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개돼지 믿음이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신앙고백을 할지라도, 마음의 의식은 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다.

세상의 더러움: 마음으로 세상을 붙잡는 것

세상 자체는 더럽지 않지만, 우리가 마음으로 세상을 붙잡을 때 더러움이 된다. 배우자, 자녀, 직장 등 세상에서의 기쁨과 만족을 얻으려는 태도는 영적인 간음이며 더러움이다. 우리의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만족해야 하며, 그 기쁨과 만족을 표현할 대상으로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비어있는 마음의 상태에서 첫 번째 대상으로만 만나진다.

십자가 사건: 세상에 대한 마음의 죽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내 몸을 포함한 이 세상에 대해 내 마음이 죽는 사건이다. 마음이 이 세상의 그 누구라도 먼저 담는다면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목회자들조차 마음에 가족, 목회 현장, 교인, 나라와 민족을 담고 설교한다면, 그 설교는 무조건 거짓이다. 진리의 도를 따른다면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기 위하여 발버둥 칠 수 있어야 한다.

영적 거짓의 대세와 분별

영적 거짓은 입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모든 교훈을 이야기할지라도, 마음과 의식의 차원에서 세상을 좋아하여 세상을 켜놓은 상태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여전히 좋고, 세상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거짓 선생들은 이러한 마음 상태를 묵인하거나 인정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며 대세를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눕는 돼지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영적인 거짓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한다.

본문 도입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돼지 믿음>의 줄거리 :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이 속담에 따르면 교회 속에서 준동하는 거짓 선생과 거짓 교훈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거짓 교인의 영적인 본질은 이 속담 속의 개와 돼지의 처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런 거짓 신앙에 사로잡힌 자들을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자들이라고 과격하게 정의합니다. 삼킬 자를 두루 찾는 우는 사자 같은 마귀의 먹이가 된다는 뜻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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