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재림'이 괜히 불편한 이유 (벧후 3:1~13)

📖 벧후 3:1~13시즌II_신약베드로전후서-2

설교 요약

재림, 왜 불편한가

'재림'이라는 단어는 늘 들어도 마음에 와닿지 않고, 실제 생활 속에서 그 의미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불편함은 우리가 지금 천국에 계신 예수님을 간절히 그리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생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조롱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언제'라는 시간적 질문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우리는 인격적 측면에서 재림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즉, '지금' 천국에 계신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재림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의 내용이 됩니다.

그리움, 십자가 생활화의 증거

우리의 마음이 십자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영인 공백의 마음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하여 부활하고 승천하여 보좌 우편에서 하나님을 직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사건 속에서도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은 신령한 몸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아버지를 모시며 사는 날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진짜로 내 마음이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 따라 보좌 우편에 머물러서 천국을 의식에 켜놓고 있다면, 당연히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천국에서의 상황에 대해 사무치는 그리움이 있어야 합니다. 이 그리움은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늘 의식 속에 천국이 켜있다는 증거입니다.

세 가지 재림 이단

재림과 관련하여 세 가지 종류의 이단이 있습니다. 첫째는 본문에서처럼 예수님 재림을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이단입니다. 이들은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느끼며 마음을 세상에 붙입니다. 둘째는 재림을 인정하되 그 시점을 특정하려는 이단입니다. '언제쯤'이라고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은 진정한 믿음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재림을 교리적으로는 알지만 실생활에 반영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이 전혀 없으며, 그리움의 작용이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유형은 복음에 입각해 세워진 교회를 뿌리부터 잠식해 버립니다.

불타버릴 세상과 영원한 마음

주의 날에는 하늘과 물질이 불타 없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좋게 여기는 모든 것들, 즉 세상의 기준에서 가치 있는 것들이 영원한 속성의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의미합니다. 돈, 몸, 가족 관계 등 모든 것이 없어질 것들에 영원한 속성의 마음을 쏟아붓는 것은 지옥의 판결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속성의 마음을 영원한 속성의 예수님과 하나님을 소망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그리움, 신앙의 진위 판가름

2,000년 동안 일어나지 않은 예수님의 재림은 참 신앙과 거짓 신앙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재림에 대한 기대는 지금 내 속에서 살아있어야 합니다. 지금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그리워하지 않으면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재림이 언제 일어날 것이냐를 관심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예수님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삶을 얼마나 간절히 그리워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지표가 재림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과 기대입니다.

섭리의 이유와 살아있는 소망

재림이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예정 가운데 선택하신 자들이 마지막까지 태어나 그 마음이 예수님 안으로 회복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사람이 그 마음을 예수님 안으로 들여보내 하늘로 올라갈 때까지 이 세상을 보존하고 계십니다. 재림이 언제 임할지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립고 천국에 가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이 간절하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의식에 켜놓고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재림은 내 안에서 살아있는 소망과 기대가 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단어 '재림'이 괜히 불편한 이유>의 줄거리 :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처럼 재림하실 예수님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이 내게도 있다면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재림'이라는 단어는 마음에 와닿지도 않고 괜히 불편한 진실처럼 여겨집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언제 있을지 모를 재림이 여전히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 천국에 계시는 예수님이 전혀 그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어 '재림'이 괜히 불편한 이유 베드로후서 3장 1절부터 13절까지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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