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바다는 주님 아는 지식의 깊이 (벧후 3:14~18)

📖 벧후 3:14~18시즌II_신약베드로전후서-2

설교 요약

은혜의 바다와 지식의 깊이

예수님의 은혜가 얕은 웅덩이가 아닌 바다를 이루는 것은 우리 안에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깊은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 지식이 날마다 깊어지고 자라야 합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 때 아무런 갈등이나 어긋남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며, 이를 위해 재림의 늦어짐이 허락되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혜를 많이 받아 누리고,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성장이며, 은혜의 바다에서 헤엄치며 사는 비결입니다.

은혜를 받기 어려운 이유: 길들여진 입맛

은혜는 공짜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받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입맛이 죄와 저주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죄와 저주에 익숙해진 우리의 입맛에는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가 달지 않고 쓰게 느껴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건강, 돈, 권력 등을 좋게 여기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 이러한 죄와 저주에 길들여진 입맛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포도주 맛을 모르는 사람이 고급 와인을 마셔도 그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은혜의 맛을 느끼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끝낼 수도 있습니다. 죄와 저주에 길들여진 입맛을 죽여야만 은혜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의 본질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얻는 가장 우선적인 은혜는 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안에서의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지, 세상 자체를 이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저주받은 입맛에는 세상을 이기는 은혜가 맞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은혜는 마음의 채움을 위해 세상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기쁨과 만족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없다면, 우리는 세상 것들을 구하게 됩니다. 세 번째 은혜는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내 인생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대해 책임지려는 주체성을 죽이십니다. 그러나 죄와 저주에 찌든 인격은 성령님과 반대로 움직이며 세상에서의 인생을 책임지려 합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내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빼앗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십자가 연합을 통한 지식의 깊이

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체험적 앎, 즉 그노시스(γνωσις)입니다. 이는 단순한 사실의 인지를 넘어, 마치 배우자와 깊은 관계를 맺듯 연합함을 통해 얻는 지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서 같이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연합하고 세상에 대해 죽음으로써 죄와 저주에 찌든 입맛은 함께 죽게 됩니다.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짐으로써 하나님 맛에 눈뜨기 시작하며, 성령님이 주체가 되시는 삶이 얼마나 좋은지를 느끼게 됩니다. 이 지식이 깊어질수록, 하나님과 성령님에 의해 공짜로 주어지는 은혜의 바다도 깊어집니다.

은혜의 바다에서 사는 삶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살 때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이는 이 땅에서 예수님을 통해 약속된 은혜를 얼마나 맛있게 잘 받아 누리며 은혜의 바다에서 살았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은혜의 바다를 거부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바라는 것들이 죄와 저주의 찌든 입맛에 의한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독교 종교의 문제는 죄와 저주에 길들여진 입맛에 맞는 상황을 따르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쓰디쓰지만, 죄와 저주에 길들여진 입맛을 죽이고 주님과 연합하여 죽어야만 합니다. 주님을 깊이 아는 삶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기필코 은혜의 바닷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재림은 늦어질지라도 은혜의 바다에서 사는 단계가 늦어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도입부

<은혜의 바다는 주님 아는 지식의 깊이>의 줄거리 : 어떻게 예수님의 은혜가 얕은 웅덩이나 개울이 아니라 바다를 이룰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깊이에 달렸습니다. 이 지식이 날마다 깊어지고 자라야 합니다. 이렇게 지식이 깊어지고 그래서 은혜가 바다를 이루는 지점까지 우리는 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 때 아버지와 아무런 갈등이나 어긋남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지요. 이런 사람이 되라고 허락된 기간이 바로 재림의 늦어짐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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