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하산이 아니고 낙하다 (빌2:1~11)
설교 요약
겸손의 본질: 낙하인가, 하산인가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겸손은 세상의 '하산'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산이 높은 곳에서 땅을 밟으며 내려오는 것이라면, 겸손은 하늘에서 허공을 통해 떨어지는 '낙하', 즉 스카이다이빙과 같습니다. 이러한 낙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이라는 높은 곳에 올라야 하는 역설이 성립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겸손이 어려운 이유는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겸손의 근거와 내용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 되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자기 비하의 마음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가 우리의 겸손의 가능성의 근거이자 내용이 됩니다. 주님의 자기 비하 없이는 우리는 진정으로 겸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위인들의 겸손은 우리가 노력해볼 수 있지만, 예수님의 겸손은 하늘과 땅 사이의 낙하 공간을 필요로 하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겸손: 죄인임을 아는 것과 낙하
인간의 겸손은 대개 '하산'에 머무릅니다. 대통령이 낮은 자리로 내려오거나, 석학이 학생들과 소탈하게 지내는 것은 교만하지 않음이지, 진정한 겸손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은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임을 깨닫는 것은 교만하지 않음일 뿐,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처럼 낮아지려면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 즉 하늘에 올라간 마음과 땅에 사는 몸 사이의 간격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하늘로 올라간 마음: 겸손의 시작
진정한 겸손은 십자가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세상을 이륙하고 마음이 하늘로 올라갈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하늘에 올라간 마음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과 천국을 느끼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땅에 사는 몸과의 공간 차이가 생기며, 비로소 낙하, 즉 진정한 겸손이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도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소원이 일어날 때 겸손이 가능해집니다.
겸손의 완성: 타인의 필요를 채움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 이 땅에서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을 때, 겸손은 완성됩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관계합니다. 이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의 실천으로, 상대를 섬겨야 할 주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늘에 완벽한 만족과 기쁨이 있음을 알기에,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과 사도 바울이 그러셨듯,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타인을 섬기는 것이 바로 낙하의 겸손입니다.
낙하의 겸손: 주님이 이루시는 은혜
세상의 하산과 같은 겸손보다 낙하의 겸손이 오히려 쉽습니다. 이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안에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과 연합하면,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시면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낙하를 통해 다른 사람에 대해 겸손할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늘을 미리 누리며, 모든 약속된 은혜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간 자만이 진정으로 낙하할 수 있고, 예수님의 자기 비하를 재현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겸손이 세상의 겸손과 어떻게 다른가요?
-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가 우리의 겸손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 ❓인간이 스스로 겸손해질 수 있나요,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가요?
- ❓마음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나요?
- ❓겸손의 완성이 타인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면,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무엇인가요?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