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 수용의 자족, 형편 단절의 자족 (빌립보서 4:11~13)

📖 빌립보서 4:11~13시즌II_신약빌립보서-2

설교 요약

세상의 자족: 형편 수용과 마음 다스림

세상에서 말하는 자족은 주어진 형편을 넘지 않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물질적 욕구나 의식주 개선의 바람을 죽임으로써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입니다. '부족해도 넉넉하다고 생각하면 항상 여유가 있고, 넉넉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항상 부족하다'는 말처럼, 마음을 다스려 욕구를 제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는 주어진 환경에 나의 분수를 맞추고 스스로를 타이르는 마인드 컨트롤에 가깝습니다.

성경적 자족의 시작점: 형편과의 단절

성경에서 말하는 자족은 세상의 자족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형편을 개선하려는 것도, 형편을 수용하려는 방식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사용한 헬라어 '아우타르케스(αὐτάρκης)'는 스토아 철학자들이 사용하던 용어로, 이상적인 마음 상태인 '아파테이아(απάθεια)'와 연결됩니다. 아파테이아는 마음이 형편이나 환경에 반응하는 '파토스(πάθος)'에서 벗어나, 마음을 환경과 단절시키고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궁핍한 형편에 마음이 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용어를 차용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편 단절의 자족'

사도 바울은 스토아 철학자들처럼 이성으로 형편과 마음을 단절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들어감으로써 실제로 '형편 단절의 자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어떤 형편이 주어지든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마치 KTX 안에 있는 승객이 차창 밖 풍경에 무관심하듯,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안에 있다면 몸이 처한 환경은 흘러 지나가는 풍경일 뿐입니다. 이는 스토아 철학자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주님 안에 있음'**이라는 비결입니다.

자족을 위한 부지런함: 영적 사실의 활용

주 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자족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환경으로부터 단절되었다면, 이제는 부지런함이 필요합니다. 복음의 자족은 내 마음에 완전히 다른 환경을 만들어주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있음, 좋음, 사랑, 아버지 되심, 주권, 그리고 천국과 같은 영적인 사실들입니다. 이 사실들을 부지런히 배우고 일깨워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형편을 수용하기 위해 스스로를 타이르거나 속이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좋음은 엄연한 사실이며 주님 안에 있을 때 별빛처럼 부각되어 보입니다.

마음의 환경 조성: 영적인 파토스

주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인 사실들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 주권, 천국에 닿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생각함으로써 마음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몸에 주어진 형편을 당하고 겪지만,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생각을 통해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을 환경으로 겪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영적인 파토스, 즉 영적인 정열과 힘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족입니다.

풍부함 속에서의 자족: 처함과 취함의 구분

궁핍함뿐만 아니라 풍부함 속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풍부함에 처할 때 마음이 공허해지거나 교만해져 타인을 홀대하는 것은 '풍부에 취함'입니다. 궁핍에 취하면 불평불만이 나오듯, 풍부에 취하면 무시가 나옵니다. 궁핍과 풍부 모두 술과 같아서 취하지 않고 **'처함'**이 중요합니다. 어떤 형편이든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있음'**으로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하고, 주님 안에서 허락된 영적 사실들을 생각하며 마음의 환경을 조성할 때 가능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단절과 위의 것 찾기

형편을 단절하고 자족하는 비결은 먼저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세상에 대해 죽고 세상이 나에 대해 죽는 자리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할례'**와 같이 마음에서 세상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절된 상태에서 골로새서 3장 1-2절 말씀처럼 위의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허락된 영적 사실들로 둘러싸인 상태에서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도입부

<형편 수용의 자족, 형편 단절의 자족>의 줄거리 : 헌금이 이익을 위한 정당한 투자일 수 있는 경우가 있을까요? 물론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쨌든지 헌금은 본질적으로 미래의 이익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예정하심 안에서 헌금을 미래의 이익을 위한 투자로 하도록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사도바울의 사명이 예정하심 안에서 택함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형편 수용의 자족, 형편 단절의 자족 빌립보서 4장 11절부터 13절까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족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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