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가려는 자는 산을 오르지 않는다 (사도행전 14:1~20)
설교 요약
마음이 하늘로 향해야 하는 이유
하늘로 가려는 자는 산을 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됨의 핵심은 천국 현실감입니다. 이는 살아있는 동안 영원한 현실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는 것으로, 오직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야만 천국 현실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닿는 사실만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땅에서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은 하늘을 지향하지 못하게 하며, 아무리 높아져도 하늘과는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늘로 가는 유일한 길은 가장 낮은 곳, 즉 십자가에 있습니다.
높아지려는 욕구의 위험성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높아지는 길을 찾는 데 능합니다.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가 되는 것만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내 말을 받아들여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좋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정받음과 높아짐의 욕구는 신문지 한 장만큼의 높이에도 존재합니다. 사회적으로 절대 높아질 수 없는 처지일지라도 본능적인 추구는 멈추지 않습니다. 고작 이 정도의 높아짐에 대한 추구만으로도 영생은 중단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높아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높아지고자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땅에서 높음을 추구하는 동안 하늘의 높음에 도달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가면이 되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가면이어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된다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가면으로 살아갈 때, 존재감을 느끼고 훌륭하게 여겨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본의 아니게 하나님의 존재감이 나의 존재감으로 오해되었다면, 반드시 그것을 바꾸는 투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것을 묵인한다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망칠 뿐만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의 그리스도인 됨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있음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높아짐에 대한 투쟁과 십자가 생활화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에서 기적을 행한 후 신격화될 뻔했지만, 옷을 찢으며 이를 만류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돌에 맞아 죽기 직전까지 갔음에도 다시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을 스스로 원수로 여기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과 실라를 높였을 때, 바울은 심한 괴로움을 겪으며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바울이 가장 싫어했던 것은 이 세상에서 스스로 높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높아지기를 바랐기에, 자신을 높이는 상황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했습니다. 십자가 생활화는 나의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가는 것이며, 높아지려는 나 자신을 원수로 대하는 것입니다.
낮아짐을 통한 진정한 복
사도 바울은 지극히 높은 하늘로 가기 위하여 세상에서는 가장 낮은 자리, 즉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고자 했습니다. 세상에서 높임을 받고자 하는 바람과 의도치 않게 높아지는 상황에 대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 자신을 원수로 여기는 것이 십자가 생활화의 진정성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십자가를 붙잡는다는 것은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우리의 진짜 복은 하늘에 있으며, 세상에 대해서는 자랑할 것이 없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높아지려는 나를 적대시하고, 의도치 않게 높아진 나를 원수로 여기는 것에서 십자가 생활화의 진정성이 확인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천국 현실감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 ❓높아지려는 욕구가 영생을 중단시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 ❓하나님의 가면으로 산다는 것은 실제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습니까?
- ❓사도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음의 위협을 겪고도 다시 시내로 들어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 ❓십자가 생활화가 자기기만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각오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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