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신분 아닌 on/off 선택이다 (사도행전 14:19~28)
설교 요약
믿음은 신분이 아닌 선택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면 자동으로 믿음의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박사님은 믿음은 신분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가' 선택하는 상태라고 단언합니다. 자동차가 차고에 있다고 운전 중인 것이 아니듯, 믿음도 선택하여 '켜져 있을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부모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처럼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스위치를 켜듯 능동적인 선택을 통해 성립됩니다. 믿음을 끄고 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는 절박한 명령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며 제자들에게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한 것은 결코 상투적인 말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의식에서 놓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다른 복음을 따랐듯, 믿음에서 떠나는 것은 곧 복음을 떠나는 것이며,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은 항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깨어있어야 합니다.
바라봄은 곧 선택, 믿음의 켜짐
믿음은 선물로 받았지만, 그 문을 지나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바라봄은 곧 선택이며,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라는 자아의식을 유지하는 것은 매 순간의 선택입니다. 돈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십자가의 예수님을 먼저 바라보는 선택을 할 때, 믿음은 켜지고 삶은 천국의 현실감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돈 문제를 먼저 의식하면 믿음은 꺼지고 맙니다.
환난은 본성과 싸움, 십자가 의식으로 극복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는 말씀은 단순히 외부의 박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근원적으로는 세상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본성과의 싸움입니다. 유전 죄를 가진 우리에게 십자가의 예수님을 의식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색한 일을 통해 믿음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불을 켜는 것입니다. 이 환난은 주님의 십자가를 의식할 때 쉽고 가벼워집니다.
장로의 사명: 믿음의 등불 밝히기
장로를 세워 믿는 주께 위탁한 것은, 바울과 바나바처럼 흔들리지 않고 믿음에 머물러 있기를 지속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장로는 행정직이 아니라, 특별히 누구보다 강렬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식하여 믿음을 켜고 유지하는 자들입니다. 삶의 문제로 믿음이 꺼질 위기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이 장로들의 믿음의 등불을 보고 방향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십자가복음방송의 존재 이유 또한 같습니다.
좁은 길과 천국 현실
믿음의 길이 좁은 이유는 어렵거나 험난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 천지에 널린 의식을 빼앗아가는 대상들 속에서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바라보는 집중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켜진 상태이며, 이 빛 아래에서 삶은 천국의 현실감 속으로 흡입됩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나라가 임하고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믿음만 켜 놓으면 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믿음이 신분이 아니라 선택이라면, 이미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실천할 수 있습니까?
- ❓돈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십자가를 우선적으로 의식하는 것이 왜 어렵습니까?
- ❓환난을 겪는 것이 믿음을 켜는 과정이라면, 환난 자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 ❓장로의 본래 사명이 믿음을 켜고 유지하는 것이라면, 오늘날 교회에서 장로의 역할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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