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다른 말 ‘나의 고생 끝’ (사도행전 26:1~23)
설교 요약
고생의 실체: 없어야 할 것이 끼어든 것
인생은 고통의 바다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고생을 하지만,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고생의 본질을 모르는 영적인 어리석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낙원에 창조하셨기에, 삶에서 괴로움과 어려움은 없어야 할 것이 끼어든 것입니다. 고생이라는 단어는 인생의 사전에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의 경험: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짐승이 주인의 말에 저항하며 뒷발질하다 스스로 상처 입는 것처럼, 신에게 저항하는 사람이 스스로 고생을 자처함을 비유합니다. 사울의 예수님을 박해하는 행위가 바로 이러한 모습이었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과 ‘있게 된’ 인간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있는 자이십니다. 태양, 달, 별, 바람 등 세상 만물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있게 된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은 하나님께서 서라 하면 서고 가라 하면 가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있게 하려는 삶을 선택하며,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이 좋게 여기는 것을 있게 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삶이며, 모든 고생의 근원입니다.
고생의 두 가지 양상: 세상 따라가기, 내 뜻대로 하기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을 따라 좋다고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스스로 좋게 여기는 것을 있게 하려 합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돈을 벌거나 재산을 지키려는 노력 모두 하나님께 저항하며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 사업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을 있게 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없애려 할 때 고생이 시작됩니다. 이는 하나님께 저항하는 것이지, 상황 자체가 고생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고해(苦海)에 대한 죽음이자 고생의 끝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해라고 불리는 이 세상에 대한 죽음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할 때, **“나의 몸은 내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내 것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음을 인정할 때, 이 세상은 더 이상 고해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인정할 때에 고해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250만 명을 이끌고 출애굽하거나 광야 생활을 하며 고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통해 고생을 끝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잊을 때 고생은 시작된다
못된 배우자, 풀리지 않는 사업, 어려운 직장 등 삶의 어려움은 십자가를 잊고 스스로 있게 하려는 자의 위치에 서고자 할 때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저항하는 삶은 스스로 고생을 만들고 자처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잊어버리고 스스로 있게 하는 자로 살아가는 한 고생은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있게 하려는 고생을 끝내고, 있게 됨의 은혜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속적으로 바라봄을 통해, 하나님께서 있게 하신 것들만을 받아 누리는 삶, 즉 고생이 끝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십자가의 다른 말은 무엇이며, 왜 ‘나의 고생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 ❓인간이 고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며,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고생을 어떻게 끝낼 수 있습니까?
- ❓‘있게 된 존재’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있게 하려는 삶’의 위험성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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