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하기, 점보기, 예측하기의 차이 (사도행전 2장 14절~18절)

📖 사도행전 2장 14절~18절시즌II_신약사도행전-2

설교 요약

사전적 의미와 성경적 의미의 괴리

사전에서 '예언하다'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말함'으로 정의된다. 종교적으로는 '신이 사람에게 전하라고 하는 말', 즉 신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본문에서 제시하는 예언, 환상, 꿈은 특별한 자들만 받는 신탁이 아니라, 성령충만을 받은 자들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이는 점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점보기와 예측하기: 세상 소원의 결과

'점보다'는 '길흉화복을 미리 알기 위해 점괘를 찾는 것'이며, '예측하다'는 '미리 헤아려 짐작하는 것'이다. 점치기가 초월적 힘을 동원한다면, 예측은 과거의 흐름을 분석하는 합리적 행위처럼 보이지만, 결국 미신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이 예측 불가능한 변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예측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의 있음을 느끼고 좋음을 확신하며 소원하는 상태에서 비롯되며, 악령의 역사로 이어진다.

예언: 하나님 소원의 발현

반면, 자기 부인을 통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소원할 때 성령이 임하신다. 성령충만은 '있음의 느낌'이 하나님께 적용되는 상태이며, 마음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있음을 느끼고 좋음을 확신하며 하나님만을 소원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성령충만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하고 그 뜻이 알려지는 것이 예언, 환상, 꿈으로 나타난다. 이는 세상의 미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며, 관심의 유일한 대상은 오직 세상 바깥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뿐이다.

예언기도의 함정

기독교 안에서 행해지는 '예언기도'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관심의 해답을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의 이름을 동원해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미래가 궁금하여 예언기도를 받는 것은 세상 것을 소원하는 악령의 상태이며, 무속인을 찾아 점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악령의 역사다. 이는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의 이름을 경홀히 여기는 가장 죄질이 악한 일이다.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 현재의 영적 상태 지적

구약의 선지자들은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아닌, 지금 선민들이 하나님과의 거리가 얼마나 벌어져 있는가를 측정하고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의 영적 상태를 알려주는 것이 예언 활동의 핵심 목적이었다. 악행의 결과로 나타날 미래에 대한 언급은, 현재의 영적 악함과 음란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나타날 결과를 제시하며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구약의 예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만 선민이 하나님과의 밀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충만과 일상적 예언

그리스도의 사역이 완수된 이 시대에 성령충만은 예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며, 이때 예언 또한 이루어진다. 성령충만이 일상적이라면 예언 또한 일상적이어야 한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 세상을 탈출한 자들이며, 이들의 의식 안에는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자체가 없다. 지금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되며, 성령이 충만할수록 장래 일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다. 미래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악령의 역사다.

하나님의 주권과 성령의 인도

미래는 하늘 아버지의 주권 안에 있기에 더욱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오늘만 살아야 한다. 미래를 알기 위해 구하는 예언은 필요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백 수, 천 수, 만 수 앞을 내다보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이 계획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기 위해 중요한 것은 지금 나의 말과 행동이다. 우리는 한 수 앞도 모르지만, 성령께서는 백만 수 앞을 내다보시며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성령충만함에 의해 말하게 되는 일상적 예언은, 마치 미래를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계획에 빗나가지 않는 가장 적절하고 합당한 말과 행동을 하게 한다.

십자가 의식과 예언의 삶

우리는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자아의식을 유지함으로써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예언의 삶을 살 수 있다. 자기가 부인될 때 성령이 충만히 임하시고, 하나님의 있음을 느끼고 좋음을 확신하며 소원이 불타오르기에 미래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다. 말하고 행동할 때마다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배우자에게, 직장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예언이 되어야 한다. 백 수, 천 수, 만 수 앞을 내다보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성령충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본문 도입부

(사도행전 2장 14절~18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오늘 말씀 중심으로 <예언하기, 점보기, 예측하기의 차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예언하기, 점보기, 예측하기의 차이’ 본문에는 성령이 충만하여 외국어로 방언을 말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사람들이 조롱하며 빈정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베드로는 이 상황을 변증하기 위하여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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