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16:1-13) 하나님처럼 보려면?
설교 요약
시각의 차이, 불행의 근원
우리가 기쁨의 동산 에덴을 잃어버린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처럼' 자기 나름의 시각을 갖게 되었지만, 이는 곧 하나님과 같은 시각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각의 차이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아무리 노력해도 기쁨과 감사가 없는 삶을 살게 합니다. 마치 금광 없는 곳에서 금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을 보는 시각의 차이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시각이 사람을 볼 때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엘리압의 용모와 키를 보고 왕으로 생각했던 사무엘과 달리,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외모나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의 내면을 보십니다.
상황을 보는 시각의 차이
시각의 차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상황을 볼 때도 나타납니다. 사울 왕은 재위 25년으로 왕권이 건재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를 폐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에 집중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 끝을 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튼튼해 보이는 국가나 가정, 개인의 성공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이미 썩었거나 폐품 처리된 것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형적인 것에 두려워하거나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잔치의 의미와 초청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와서 이새의 아들들을 불러 잔치를 베푼 것은 단순한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대통령 취임식이나 아카데미 시상식처럼 초청장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자리였습니다. 이새는 막내 다윗을 양치기로 남겨두고 일곱 아들만 데리고 갔는데, 이는 다윗이 잔치의 의중과 상관없는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외형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소외시키지만, 하나님은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자를 택하십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하나님의 시각은 '하늘 아래 뫼'와 같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높다고 여기는 태산 같은 세상의 가치들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성실하게 높은 산을 향해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과 같은 시각을 갖지 않는 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여리고 성을 정탐한 라합이 이스라엘 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섰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아이의 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십자가, 하나님의 시각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
하나님과 같은 시각을 갖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의 십자가뿐입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옛 시각과 가치관이 죽어야 합니다.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 세상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죽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죽어야 합니다. 황사가 아름다운 봄을 삼키는 것을 보며 이 땅에 마음을 두지 않고 천국을 생각하는 것처럼, 십자가를 통해 나의 시각이 죽고 하나님의 시각이 회복될 때,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이 에덴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하나님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사람을 볼 때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사울 왕의 왕권이 건재해 보였음에도 하나님께서 폐위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하나님의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 ❓십자가를 통해 나의 시각이 죽고 하나님의 시각이 회복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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