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5:1-12) 사랑의 두 가지 변태
설교 요약
변태적 사랑의 첫 번째 얼굴: 말씀의 왜곡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움직이며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우리가 말씀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해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 승리라는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려는 열망을 그대로 수용하여 법궤를 내어주었다. 이는 말씀을 변질시켜 선민을 망하게 하는 변태적 사랑이다. 많은 설교자들이 성도들의 세상적 소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변조하여 위로하고 격려하는 행태 역시 악질적인 변태이며, 결국 자신과 성도 모두를 망하게 하는 길이다.
하나님의 소원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라
하나님은 인격적인 주체이시기에, 그분 앞에 나아가는 우리는 세상에서 가졌던 모든 소망과 소원을 깨뜨려야 한다. 하나님의 소원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기 소원으로 시작한 전쟁은 멸망을 가져오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전쟁은 승리한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소망을 가지고 오는 이들에게 말씀을 변조하여 그 소망을 이루는 길을 비춰주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너희들 소원 죽여라' 가르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해야 한다.
변태적 사랑의 두 번째 얼굴: 맹목적인 섬김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 신의 머리가 떨어지고 손목이 끊어진 참담한 상황에서도 문지방을 신성시하며 밟지 않는 모습은 맹목성을 보여준다. 다곤 신은 풍요의 신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우상이었다. 이는 내면의 풍요로워지고 싶은 열망이 객관적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나타나는 사랑의 변태이다. 내 기분과 열망 때문에, 대상의 실제 모습과 상관없이 섬기는 것이다.
내 기분의 사랑, 대상의 실체를 보지 못하다
자식 사랑, 사업 사랑 등 인간 세상의 많은 사랑이 이 변태적 형태를 띤다. 부모는 자녀의 객관적 특성과 능력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열망에 사로잡혀 내 기분대로 사랑한다. 사업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업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남편과 아내, 자녀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기분에 따라 선물을 사거나 트집을 잡고, 타인의 이야기에 휩쓸려 자녀에게 무조건적인 기대를 강요한다. 이는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하는 사랑의 변태이다.
십자가에서 죽을 때 실체가 드러난다
사랑의 대상들에 대한 실체를 발견하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서 내 열망이 죽는 것이다. 2,000년 전 주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으로 내 마음속에 실현될 때, 내 기분과 열망에 사로잡혔던 사랑이 죽고 하나님이 보시는 대상의 실제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내 열망, 기분, 소원들은 죄악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전히 죽어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시작하는 삶
십자가에서 죽음이 나의 죽음으로 살아 역사할 때, 만나는 모든 대상에 대해 실제의 모습, 하나님만이 아시는 실제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나를 통해 하시게 된다. 이 변태로부터 극복되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서 그 죽음이 오늘을 사는 나의 죽음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만이 2,000년 전 주님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소원으로부터 삶을 출발하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모든 대상을 바라보게 한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설교에서 말하는 '변태적 사랑'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 ❓말씀을 변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하나님의 소원과 인간의 소원은 어떻게 다른가요?
-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 ❓성령의 능력은 십자가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전문 읽기와 AI 질문은 앱에서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3개 언어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