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오감 신뢰, 이젠 끝내자 (삼상 6:1~21)
설교 요약
오감 신뢰라는 저주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있음에 대한 존재감과 유일한 좋음에 대한 만족감을 실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실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이 저주를 받아 찌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주받은 마음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육체의 오감을 절대적으로 신뢰합니다. 이 오감 신뢰가 유지되는 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감하지 못하고, 오직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밀착하며 살아갑니다. 마음이 오감을 신뢰하는 동안에는 오감을 뛰어넘어 계시는 하나님을 실감할 수가 없습니다.
블레셋의 법궤 반환 프로젝트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 신상이 박살 나고 독종이 퍼지는 재앙을 겪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진짜 신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붙잡는 대신, 하나님과 결별하기 위해 법궤를 돌려보내는 프로젝트를 실행했습니다. 그들은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암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시험하려 했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 즉 오감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는 저주받은 자들의 전형적인 태도입니다. 그들은 오감으로 포착할 수 없는 대상을 신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습니다.
벧세메스의 호기심과 진노
이스라엘의 벧세메스 사람들 역시 블레셋과 다를 바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법궤를 들여다보았고, 그 결과 큰 진노를 당했습니다. 그들이 법궤를 들여다본 이유는 하나님을 이름으로만 의식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감으로 포착할 수 없는 하나님을 오감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오감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려는 시도이며,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불신앙의 극치입니다.
오감의 나라를 탈출하라
하나님은 자신을 육체의 오감에 가리시고 오직 이름으로만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그러나 마음이 오감을 신뢰하는 저주 속에 있으면, 하나님을 실감하기 위해 자꾸만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신비한 체험을 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비주의의 덫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오감의 나라를 탈출해야 합니다. > "오감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 중에 진짜 있음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있음이라서 존재감은 하나님께만 해당한다."
십자가 생활화의 결연함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 돈이나 건강, 자녀의 문제로 기분이 좌우된다면 그것은 여전히 오감의 노예로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생활화를 통해 내 마음이 오감에 밀착된 상태에서 죽어야 합니다. 오감으로 포착되는 세상의 것들은 좋음도 나쁨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좋음이십니다. 이제는 이 자기-주권의 죽음을 통해 오감 신뢰에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하나님 실감의 실제
우리가 십자가를 붙잡고 애원해야 할 이유는 이론적인 믿음을 실제적인 실감 믿음으로 바꾸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삶의 현장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오감 신뢰가 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에 속지 말고,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서 오직 하나님만을 나의 존재 근거로 삼는 결연한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본문 도입부
이 설교가 다루는 질문
- ❓왜 하나님은 자신을 오감으로 느낄 수 없게 숨겨두셨습니까?
- ❓일상에서 오감 신뢰를 깨뜨리는 구체적인 십자가 생활화 방법은 무엇입니까?
- ❓기분이 좋고 나쁜 것이 왜 오감 신뢰와 연결됩니까?
- ❓하나님의 존재감을 실감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합니까?
- ❓신비한 체험을 구하는 것이 왜 위험한 신앙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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