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17:1-29) 자살, 피살, 날마다 죽음

📖 삼하17:1-29시즌I_구약사무엘하-1

설교 요약

아히도벨의 자살: 세상 사랑의 절망

아히도벨은 다윗의 왕권에 치명적인 계략을 제시했으나, 압살롬이 후새의 말을 택하자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자살합니다. 이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충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오는 절망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마치 황진이를 향한 떠꺼머리 총각의 상사병 죽음처럼, 세상의 인정과 수용을 갈망하다 좌절될 때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세상 사랑의 파국입니다.

세상 사랑의 또 다른 결말: 피살

소세양처럼 세상이 나를 호의적으로 대하거나, 이사종처럼 세상이 왔다 갔다 하는 관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 때문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에 이르는 피살은,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형태의 죽음입니다. 이 역시 세상 사랑의 결과입니다.

날마다 죽음: 세상과의 단절

사도 바울이 말하는 '날마다 죽음'은 세상 사랑의 좌절이나 아쉬움 때문에 오는 죽음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을 좋아하기 위해 세상을 등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원칙이 아닌 하나님의 원칙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소원하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이는 죽음이 아니라 생애의 출발점입니다.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살기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거나 소원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반면 '하나님에 대해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소원, 계획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소원하는 것이 세상에 대해 죽은 자의 삶입니다.

십자가의 의미: 나의 죽음을 받아들임

우리의 죽음은 주님이 이미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 나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사는 삶은, 매 순간 세상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만을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주권의 죽음을 통해 가능합니다.

날마다 죽음의 현실적 적용

매일 아침, 세상에 대해 죽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인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들 때, 그것이 나의 소원이 아닌 하나님의 소원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광대무변하신 하나님을 매일 알아가는 데 집중할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불평 없이 인내하라는 십자가의 삶입니다.

본문 도입부

사무엘하 17장 1절부터 29절까지 자살, 피살, 날마다 죽음<자살, 피살, 날마다 죽음>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은, 예수님의 그 죽음을 매일매일 일상화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자살과 피살과 어떻게 다를까요? 다 아시겠지만 다시 한 번 그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날마다 죽고 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좀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주된 몸통이 아히도벨의 자살할 때까지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아히도벨의 이야기가 핵심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고 있습니다마는 아히도벨의 자살이 이루어지는데 자살하기까지의 경위는 이렇습니다. 아히도벨이 다윗의 후궁들을 아들 압살롬으로 하여금 범하게 만들어서 명실 공히 압살롬의 왕권의 정통성을 천하에 공포합니다. 확인시키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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