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11:1-5) 왜곡하고 싶은 역사(VI)-한 사람, 세 얼굴

📖 삼하11:1-5시즌I_구약사무엘하-1

설교 요약

죄악의 본질: 다윗의 첫 번째 얼굴

성경은 다윗의 극악무도한 범죄를 자세히 묘사하며, 이는 우리 자신의 모습임을 직시하라고 촉구합니다. 아프리카 소년병들의 잔혹한 행위와 다윗의 간음 및 살인 계획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죄악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죄악은 교양이나 법에 의해 억눌려 있을 뿐, 본질적으로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이것이 바로 접니다. 우리의 불평, 원망, 시기 등은 이러한 죄악이 지배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거리의 창녀와 수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죄인으로 간주되는 것처럼, 우리 안의 죄악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기독교 신학의 인간 이해입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는 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죄악에 대한 분노: 다윗의 두 번째 얼굴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죄악을 고발당하자 격렬하게 분노합니다.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 시대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동성애, 살인 등 명백한 범죄에 대해서도 분노하지 않고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만연합니다. 진화론적 세계관은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상실하게 만들고, 이는 결국 범죄에 대한 무감각으로 이어집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마음에서 잊어버리는 동시에, 우리는 범죄를 보고도 범죄인 줄을 모르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의 죄악 된 모습에 대해 분노하지 못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실감한다면, 불평이나 원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죄인됨의 고백: 다윗의 세 번째 얼굴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문무백관 앞에서 무릎 꿇어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모습은 하나님을 영접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향해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절망할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죄를 죄로 드러내는 현미경과 같아서, 우리 안의 죄악 됨을 명확히 보게 합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죄로 드러나지를 않아요. 자신의 무능함과 죄악 됨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성령 하나님이 임하시어 평강과 기쁨을 주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영접의 조건

삼위일체 하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삼각형 모양처럼 세 꼭짓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모두를 영접해야 합니다. 이는 인간 역시 삼위일체적인 존재가 될 때 가능합니다. 죄악 된 현실을 보고 자신에게 분노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할 때, 성령 하나님이 임하시어 삶을 천국으로 바꾸어 가십니다. 하나님만 삼위일체가 아니라, 인간도 삼위일체가 될 때에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죄인됨의 인식과 감사

자신의 죄악 됨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은 사업 실패나 건강 문제 앞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습니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도 서로의 죄인됨을 인정하는 부부에게는 불화가 없습니다. 잘난 사람들만 모인 교회는 시끄럽지만, 죄인들이 모인 교회는 평화와 감사가 넘칩니다. 나 같은 죄인이 이 밥을 먹게 해 주시다니 감사해요. 자신보다 남이 낫다고 여기며 겸손할 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하늘의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핵심: 자기 주권의 죽음

우리의 삶은 이미 있는 죄를 보고 파괴하며 나아갈 때 쉬워집니다. 다윗과 같은 범죄의 가능성이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하는 가정에는 불화가 없습니다. 정신병자들이 단합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인들이 있는 교회는 시끄러울 일이 없습니다. 죄인됨을 고백하는 곳에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결국 십자가 복음은 자기-주권의 죽음을 통해 가능하며, 이는 자신의 죄악 됨을 철저히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럴 때 비로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본문 도입부

사무엘하 11장 1절부터 5절까지 왜곡하고 싶은 역사(VI)-한 사람, 세 얼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정말로 낯이 뜨거워지는 그런 본문입니다. 마태복음 족보의 말씀 속에 기가 막힌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마1:6절에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라고 나옵니다. 여러분! 이게 성경에 쓰일 수 있는 말입니까? 왜, 남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습니까? 또 성경은 이 말을 이렇게 기록을 해 놓았습니까? 다윗은 그 많은 아내 그 많은 후궁을 다 놔두고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합니다. 남의 남자 이름이 나오고 그 남자의 아내 밧세바의 이름이 나오고, 그리고 그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예수님의 족보 안으로 들어오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오늘 왜곡하고 싶은 역사, 예수님의 족보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한 번 돌아보고 예수님을 바르게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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